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바람아님 2018. 1. 29. 18:11

(조선일보 2017.11.02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학교 건축 양식 너무 획일적
네모난 校舍와 운동장 하나… 전체주의적 사고 가지게 돼
佛에선 학교가 건축賞 받아
다양한 교실·건물 있어야 차이 인정하고 도전의식 생겨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형 건설사의 대형 아파트 단지를 선호한다.

청년들은 창업보다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같은 대형 조직에 속하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에는 도전이나 모험보다는 큰 단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

이렇게 된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6·25전쟁 통에 두 개의 이데올로기 중 하나에 속해야 했던 배경도 있고, 군대 문화와 교복 문화도 이유일 수 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보면 학교 건축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 첫 12년 동안 경험하는 공간이 학교다.

그런데 학교 교실과 건축 양식은 건국 이래 바뀌지 않았다.

경제 발전으로 한 학생당 교실 면적은 지난 40년간 7배 넘게 커졌다.

하지만 수십 개의 똑같은 박스형 교실이 모여서 만들어진 네모난 교사(校舍) 하나와 운동장 하나로 구성된

학교 건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우리나라 건축에서 담장이 있는 건축은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이다.

학교는 교정(校庭), 교도소는 교정(矯正) 시설이라 부른다.

둘 다 담을 넘으면 큰일 난다.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이 들어선 모습을 띠고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둘 사이에 공간 구성 차이를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막사와 연병장 방식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 어디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로 구성된 대형 교사에서 12년 동안 지내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양계장의 폐쇄형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닭이 떠오른다.

남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12년간 똑같은 교실에서 자라난 사람은 똑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편하다고

여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평생을 양계장에서 사육된 닭을 어느 날 갑자기 닭장 밖으로 꺼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보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양계장 같은 학교 건축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졸업한 다음에 창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닭으로 키우고 독수리처럼  

날라고 하는 격이다.

큰 학교의 똑같은 교실에서 숫자만 다른 '3학년 4반' 교실에서 키워진 아이들은 대형 아파트의 304호에서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대기업과 공무원과 대형 쇼핑몰을 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다양성을 두려워하는 사회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필자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다.

총괄 건축가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복합 커뮤니티센터, 공원을 한 단지에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다.

숲 속 운동장과 1, 2층 주택 같은 크기의 교사동(棟)과 그 앞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마당이 있는 학교를 디자인했더니

교육부 관계자가 "학생들 관리가 안 된다"며 반대했다.

몇 달에 걸쳐 설득하자 그다음에는 좋은 줄은 알겠는데 우리는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어느 한 학교만 좋아지면

형평성이 깨지니 안 된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좋은 아이디어는 사립학교에 가서 하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추후 공모전에서 필자의 마스터플랜을 잘 소화한 훌륭한 작품이 출품되었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그 안을 1차로 탈락시켰다.


프랑스에서는 학교가 건축상을 받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건축상을 받는 공간에서 좋은 인성과 창의적인 인재로

자라날 뿐 아니라 건축을 보는 안목도 좋아질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는 공립학교가 건축상을 받은 적이 없다.

많은 교육 예산을 들이면서도 학생을 위한 제대로 된 학교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도전의식을 지닐 수 있게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부터 더 작은 규모로 분동(分棟)해야 하고, 그 앞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작은 마당을 만들어

다양한 모습으로 외부 공간에서 놀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금은 축구를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 외부 공간을 사용하지도 못한다. 여건이 안 되면 테라스라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천장과 다양한 모양의 교실 평면도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대형 건물보다는 마을 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

운동장을 둘러싼 담장을 허물고 주변에 가게를 두어서 자연스러운 감시를 통해 안전한 운동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방과 후 시민들은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하고 아이들은 마을 주민 전체가 키우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학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도전정신이 없고,

전체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국민만 양산할 것이다.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학교 건축이 바뀌어야 한다.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조선일보,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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