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55] '전략적 콘셉트'

바람아님 2018. 2. 12. 10:53

(조선일보 2018.02.12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 포스터, 의뢰처 : 부쿠레 슈티 교통경찰, 디자인 : 머큐리 360, 2004년.음주운전 방지 캠페인 포스터,

의뢰처 : 부쿠레 슈티 교통경찰, 디자인 : 머큐리 360, 2004년.


'한 잔쯤이야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판단에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거나 불구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 질병관리 및 예방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매일 28명이

음주운전으로 인한 차량 충돌 사고로 사망하며,

연간 경제적인 손실은 440억달러(약 47조80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총 4621명

중 583명(12.5%)이 음주운전의 희생자로 집계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와 같은 위험과 피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독창적으로 디자인한 공공 포스터를 활용하고 있다.

 2004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교통경찰은 광고

에이전시 '머큐리 360'에 음주운전 방지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했다. 경찰이 제시한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의 목표는

진솔하지만 전략적이었다. 눈 뜨고 보기 힘든 끔찍한 현장을

재현하여 보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는 전술보다,

술을 마시면 절대로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는 결정을 돕는

전략적인 디자인을 원했다.아트 디렉터 리비우 투카누

(Turcanu)와 라두 알렉사(Alecsa)가 공동으로 창안한

디자인 콘셉트는 이지적(理智的)이며 은유적이다.

한밤중에 크게 부서진 자동차 두 대가 마주 선 장면은 끔찍한 음주운전 사고임을 직감하게 한다.


사고 현장을 보존하려고 경찰이 흰색으로 표시한 희생자의 윤곽이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 Vodka)' 병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어리석음(Absolute Stupidity)'이란 문구는 음주운전이 잘못된 결정임을 강조하지만,

첫 단어의 끝에 영어 표기대로 'e'를 남겨둬서 앱솔루트 보드카와의 관련성을 차단했다.

유명 브랜드를 패러디하면서도 상표권 침해 시비를 미연에 방지하는 지혜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