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8.02.14. 18:46
파주 법원리 사거리를 지나 시가지 서쪽 끝지점 우측으로 2차선 도로가 이어진다. 이 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언덕길을 넘어가면 우측에 ‘경기도 율곡교육연수원’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율곡이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연수원 본관과 정문, 경비실 모든 구조물에 한옥지붕이 얹혀 전통의 이미지가 풍겨 나온다. 이 연수원 아래쪽으로 너른 주차장이 있어 이곳이 율곡 이이(1536~1584)의 유적지임을 알려준다. 유적지의 정문인 삼문을 지나니 중앙의 너른 잔디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잔디밭 외곽에는 율곡을 기념하는 공간들과 그 일가의 묘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율곡이나 신사임당을 생각하면 강릉 오죽헌을 떠올리게 되는데 정작 율곡의 본가가 서울 근교인 파주였다니? 율곡이 태어난 곳은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릉이었지만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본가인 파주에 올라와서 성장을 하였으니 파주야말로 그의 정신적 거점 공간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잔디밭 우측에 율곡과 신사임당의 업적이 전시되어 있는 율곡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전면에는 자운산 능선을 따라 율곡 일가의 묘역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좌측에는 율곡의 사후에 건립된 자운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자운서원은 효종 때 ‘자운(紫雲)’으로 사액을 받아 조선시대 이 지역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으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1970년대에 국가의 지원과 유림의 모금으로 서원을 비롯한 주변공간이 모두 정비되어 지금과 같은 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자운문이라 쓰여 있는 외삼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기숙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그 뒤로 강당인 강인당(講仁堂)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인당 뒤 내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가장 뒤쪽에 율곡의 사당인 문성사(文成祠)가 놓여 있어 자운서원 전체는 강당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墓)의 배치를 하고 있다. 강인당 앞 양쪽에 서 있는 두 그루 느티나무는 수령이 400년을 넘긴 보호수로 자운서원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서원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담아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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