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世說新語] [455] 어가지요(御家之要)

바람아님 2018. 2. 23. 09:39
조선일보 2018.02.22. 03:02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은 선비로 지녀야 할 일상의 범절을 924개 항목으로 나눠 정리한 책이다.

누군가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御家之要)을 묻는다. 이덕무의 대답은 이렇다. "가장은 차마 못 들을 말을 꺼내지 않고, 집안 식구들이 감히 말하지 못할 말을 하지 않으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잡힌다(家長毋出不忍聞之言, 家衆毋作不敢言之說, 則家道正矣)." 가장이 권위로 눌러 기분대로 함부로 말하면 가족에게 두고두고 깊은 상처로 남는다. 아내가 가장에게 돈 못 벌어 온다고 악을 쓰고, 자식이 아비에게 해준 게 뭐 있냐고 대들면 더 이상 집안의 법도는 없다.


다시 한 단락. "춥고 배고픔이 지극하면 자제들이 부형을 원망해서 '왜 나를 이렇게 춥고 주리게 하는가?'하며 말한다. 부형은 자제에게 화를 내며 '어째서 나를 춥고 주리게 하는가?'한다. 이것은 맹자가 말한 항심(恒心)이 없는 자이다. 그래서 인륜의 즈음에 비록 사망과 환난에 이르더라도 돈후함에 힘쓰고 각박함을 경계해야 한다(飢寒之至, 子弟怨父兄曰: '何使我飢寒?' 父兄恚子弟曰: '何使我飢寒?' 此孟子所謂無恒心者也. 故人倫之際, 雖至死亡患難, 務敦厚而戒刻薄也)." 가까울수록 말을 함부로 모질게 한다. 서로서로 탓만 하니 가정의 화목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남에게도 그렇지만 가족 간일수록 더 예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윗사람에게 간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나. "어른이 허물이 있을 경우, 성이 났을 때 간해서는 안 된다. 간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허물만 더하게 된다. 그 마음이 가라앉고 기운이 내려가기를 기다려서 조용히 말하는 것이 옳다(長者有過, 不可因其怒而諫之. 諫不入而過愈加焉. 俟其心平氣降, 從容言之可也)."


옳은 말도 때를 가려서 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해야 보람이 있다. 특히 어른에게 말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부끄러움과 분노, 두려움과 뉘우침이 사람이 되는 바탕이다(耻憤惕悔, 爲人之基)." 잘못된 일 앞에 부끄러워할 줄 알고, 불의한 일에 분노할 줄 알며, 혹 몸가짐에 잘못은 없었는지 두려워하고, 마음자리에 허튼 구석은 없었는가 뉘우치는 마음을 지녀야 사람의 바탕이 닦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