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아님 2018. 5. 5. 06:58
[중앙일보] 입력 2018.05.02 07:00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들려온 노래입니다.
오연준 어린이의 맑은 목소리에 바람이 담긴 듯했습니다.  
그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에 서고 싶어졌습니다.
 
4월 29일과 30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에 갔습니다.
바람개비가 온몸으로 바람을 타고 있었습니다.
'하나인 한반도를 오가는 자유로운 바람의 노래'를 표현한  김언경 작가 작품입니다.'
여기에선 바람이 몸과 눈과 소리로 느껴집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 바람개비/20180430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 바람개비/20180430

 
사람들이 그 바람에 환호하며 바람개비 속으로 뛰어듭니다.
너나없이 휴대폰으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엔 바람이 찍히지 않습니다.
찍은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표정엔 실망한 빛이 역력합니다.
왜 바람개비의 바람이 찍히지 않았을까요?
이는 휴대폰 카메라의 한계입니다.
셔터스피드가 너무 빨라서 움직이는 바람개비를 정지 동작으로 잡아낸 탓입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 바람개비/20180430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 바람개비/20180430

 
해결책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편법입니다.
카메라를 위아래로 흔들며 사진 찍는 방법입니다.
흔들림을 이용하는 사진의 테크닉입니다.
하지만 이 사진에선 참 바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두 번째는 기다리는 겁니다. 
빛이 부족해지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점차 빛이 어두워지는 만큼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스피드가 느려집니다.
적당히 어두워지면 바람개비의 바람이 바람인 듯 그려집니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노을이 얼핏 남았습니다.
먼 하늘에 한 무리의 새가 보금자리로 떠납니다.
 
적당히 어두워진 시간입니다.
휴대폰 카메라에선 살짝 바람이 그려집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바람의 시간이 아닙니다.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땅거미가 집니다.
어둠으로 가기 전 푸른 빛이 내립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40분의 1초, 천천히 도는 바람개비에도 바람의 잔상이 그려졌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이날은 하필 어두워질수록 바람이 잦아들었습니다.
건듯 불어줄 바람을 기다릴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셔터스피드를 조금 더 느리게 조정했습니다.
30분의 1초입니다.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려옵니다.
타닥타닥.
멀리서부터 점차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처럼 그렇게 바람이 왔습니다.
바람개비도 그렇게 바람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더 어두워질수록 가로등 빛이 더 눈에 부십니다.
달도 덩그러니 밝아졌습니다.
가로등과 달빛이 밝아지는 만큼 바람개비는 어두워집니다.
이내 바람개비는 어둠으로 묻혀갈 것입니다.
20분의 1초, 휴대폰 카메라의 플래시 기능을 켰습니다.
바람이 설핏 불다 맙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20180429

 
어둠과 함께 바람이 잠들었습니다.
바람개비도 고단한 몸을 쉽니다.
그림자도 고요합니다.
바람에 제 몸 맡겼던 하루가 저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