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88] 이겨도 져도 전쟁은 비극… 王들이여, 창칼을 탐하지 마오

바람아님 2013. 11. 6. 10:50

(출처-조선일보 2012.12.0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1807년 2월 8일, 나폴레옹은 폴란드의 에일라우에서 그의 '대육군(大陸軍)'을 이끌고 러시아를 상대로 혈투를 벌였다. 전투는 나폴레옹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도 무려 2만5000명에 이르는 병력을 잃었으니, 사실상 이 전투의 승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에일라우의 승리를 기념하길 원했던 나폴레옹은 큰 상금을 걸고 회화 공모전을 열었다. 경쟁자 25명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쥔 이는 나폴레옹의 종군 화가로 이미 황제의 총애와 명성을 한꺼번에 누리던 앙투안-장 그로(Antoine-Jean Gros· 1771~1835)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실제로 에일라우에서 입었던 망토와 모자를 그로에게 하사했고, 그로는 죽을 때까지 그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로는 경연에 나설 생각이 별로 없다가 당시 루브르 박물관 관장이었던 비방-드농 남작의 종용에 못 이겨 참여했던 것이었다.

앙투안-장 그로 '에일라우 전쟁터의 나폴레옹' - 1808년, 캔버스에 유채, 521×78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로는 나폴레옹을 승리를 자축하는 무자비한 군주가 아니라 눈 덮인 대지에 쓰러져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사들을 하나하나 진심으로 보살피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렸다. 포연이 자욱한 공기와 암울한 겨울 하늘, 그 아래 겹겹이 쌓인 시체는 잔인할 정도로 생생해서 누구도 이 그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실제로 "지구상의 모든 왕이 이 모습을 본다면 전쟁과 정복을 그토록 탐하지 않을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에일라우의 교훈을 너무 빨리 잊었다. 1812년, 또다시 러시아의 동토(凍土)를 침공한 그의 군대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때 나폴레옹의 기세를 꺾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불패(不敗) 명장이 바로 그 유명한 '동장군(General Winter)', 즉 매서운 추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