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조인원의 사진산책] 외롭게 떠나라

바람아님 2018. 6. 2. 07:51

조선일보 2018.05.31. 03:12


사진 동호회에선 어울려 다니며 구도 선정·촬영法 친절히 조언
하지만 유명 作家 아니어도 모든 사진엔 각자의 시선 담겨
낯선 변두리·뒷골목에서 외롭게 기다릴 때 좋은 사진 나와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


여럿이 함께하면 수월한 것들이 있다. 높은 산을 오르거나 장거리를 뛸 때도 혼자보다 함께하면 더 재미있고 시간도 금방 간다. 하지만 사진은 다르다.


처음 사진을 배울 때 동호회를 들면 회원들과 어울려 풍광 좋은 자연으로 가거나 고궁, 한옥(韓屋)마을, 절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찍는다. 초심자들에겐 구도를 연습하고 촬영한 사진을 서로 비교해가며 조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사진은 자기 손에 쥔 카메라로 프레임을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오직 혼자 찍는 것이다.


단체 출사(出寫)는 사진보다 어울려 다니는 즐거움이 크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사진보다 사람에게 신경이 더 쓰인다. 사진가들이 몰리는 행사장에선 미리 자리를 맡아 빨랫줄까지 쳐서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는다. 전남 보성의 녹차 밭에서 찻잎을 따는 모습을 촬영하러 갔을 때 동호인들이 몰려 있는 반대편에서 잠깐 사진을 찍다가 그림에 방해된다고 심한 욕까지 먹었다. 사진에 정답이 어디 있나?


아마추어 사진가 A도 경직된 사진동호회 분위기에 질려서 몇 달 같이 하다 탈퇴한 후 혼자 다니며 촬영한다. 그는 여럿이 몰려다니면 동호회를 이끄는 사람의 취향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했다. 사진동호인들이 몰리는 경남 창녕군 우포늪이나 경기도 화성 우음도, 순천만 같은 곳을 따라가면 수백 명이 삼각대를 설치해놓고 거칠게 자리 경쟁 하는 것을 본 A는 더 이상 사람이 몰리는 곳을 찾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 관광지나 도심에서 벗어난 변두리 외곽이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찾아다닌다. 낯선 길 위에 만난 예상 못한 풍경들에서 더 좋은 사진들이 나왔다며 여럿이 다녔다면 다른 사람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야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찍어야 될 순간들을 놓쳤을 거라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같은 자리에서 몰려다니며 찍는 것이 아니라 외롭게 대상을 마주해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게 사진이다. 속성으로 카메라 기초부터 전시회까지 열어주는 값비싼 강좌에서 얼마나 사진에 대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려줄지 의문이다. 멋진 그림이 나올 만한 포인트만 따라다니며 셔터를 눌러봐야 남들과 똑같은 장면만 건진다. 대로(大路)에서 서로 뽐내는 찬란한 광경만 몰려다니며 찍는 것보다 낯선 뒷골목을 오롯이 걷다가 만나는 발견이 더 큰 것이다.


매그넘 사진가 레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은 "무엇을 바라보려면 외로워야 한다"고 했다. 드파르동은 "걷는 동안 자유롭고, 기분이 좋아지고, 사진을 찍고, 번번이 다시 찍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길을 따라가거나 배회하다 보면 두 번 다시 못 찍을 멋져 보이는 사진을 만날 때가 있다"며 사진가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사진가 강운구도 사진가는 외톨이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강운구는 천년고도 경주 남산의 바위 위에 새겨진 불상들을 찍기 위해 200번 넘게 홀로 산을 올랐다. 세월의 풍화(風化)에 형태가 흐려진 바위의 음각을 또렷이 찍기 위해 햇빛이 사선(斜線)으로 드는 시간을 찾아 규격이 다른 카메라에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했다. 새벽에 동이 트는 순간을 위해 밤부터 기다렸고 어스름한 저녁 부드럽게 사각으로 비추는 광선을 기다렸다.


1950년대 중반 미국인들의 모습을 거친 앵글로 담아 '미국인들'이라는 사진집을 통해 사진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도, 1980년대 서울의 뒷골목을 누비며 서민들의 정겨운 풍경을 담았던 김기찬도,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다니며 소외된 난민들을 기록하는 성남훈도 모두 혼자 다니며 고민하면서 세상을 기록했던 사진가들이다.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이 아니어도 모든 사진엔 자신의 시선이 투영된다.


부서진 벽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의 당당함, 지붕 위에 늘어져서 자다 깬 고양이의 눈빛,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가 입은 분홍색 티셔츠, 구름 사이로 잠깐 나온 반가운 달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꽃 그림자도 외롭게 걸을 때만 마주칠 수 있다. 대상을 제대로 응시하고 새로운 앵글을 시도하며, 자신의 사진을 끊임없이 반성하는 일은 외로울 때 가능하다. 익숙한 곳을 떠나고 혼자 다녀야 사진이 나온다.


외롭게 떠나라! 사진을 위해 집을 떠나 낯선 곳을 찾아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홀로 사유한 사람만이 자기 사진을 찍는다. 살아가는 것이 본디 혼자이듯, 사진도 혼자 다닐 때 보인다.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