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08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신화사
느닷없이 재물이 들어오면 횡재(橫財), 제멋대로 사납게 굴면 횡포(橫暴),
남의 재물을 슬쩍 챙기면 횡령(橫領), 별안간 불행이 닥치면 횡액(橫厄), 좋
지 않은 일이 마구 번지면 횡행(橫行)….
한자 표기를 단 위의 단어들은 '횡(橫)'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울러 그 새김이 대개는 '불법' '비정상' '무질서'의 흐름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감이 썩 좋지 않은 글자다.
본래 글자 뜻은 '가로'다. 또 그 형태로 걸쳐 있는 상태의 무엇을 지칭한다.
그런데도 이 글자는 억울하게 불길함 또는 불행과 닿아 있다.
한자 세계가 표방하는 질서와 어긋나서 그렇다.
한자(漢字) 세계는 가로세로를 종횡(縱橫)으로 적는다. 세로인 종(縱)이 먼저다.
세로는 상하(上下)와 귀천(貴賤)을 가르는 기준이다. 방위로 따지면 남북을 잇는 선이다.
횡(橫)은 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간주해 위의 단어들로 이어졌다.
옛 중국 왕조의 운영자와 조력자들은 남북의 종축(縱軸)을 가장 중시했다. 황제는 북쪽에 앉아 남쪽의 신하를
내려다보는 좌북면남(坐北面南)이어야 했다. 베이징 자금성을 비롯한 옛 중국 왕조의 궁성이 다 그렇다.
1949년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당 체제다.
국제 연대를 표방했던 초기에는 옛 왕조의 남북 종축 질서를 부정했다.
대신 평등과 연대를 내세우며 베이징 동서(東西)의 횡축(橫軸)인 창안다제(長安大街)를 강조했다.
그러나 어느덧 강성해진 2008년 중국 공산당은 옛 왕조의 축선 북쪽 끝을 12㎞ 연장한 곳에 스타디움을 세워
베이징 올림픽〈사진〉을 치렀다. 올해 2월에는 시청률이 가장 높은 중앙텔레비전(CCTV) 설날 프로그램에서
옛 황제만이 행했던 태산(泰山)의 봉선(封禪) 제례를 방영해 큰 화제였다.
한자 세계가 지닌 종적인 질서, 그 테두리를 감쌌던 자국 중심의 중화주의 복원인지를 살피게끔 하는 대목이다.
'중심'과 '주변'의 차별적 시선으로 우리를 대할 수도 있어 관심을 기울여야 할 현상이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조선일보 2018.01.26 ~ ) |
[1] 皇帝와 붉은 자본가 (조선일보 2018.01.26) [2] 대륙의 虛實 (조선일보 2018.02.09) [5] '策士'와 대항마 (조선일보 2018.03.30) [6] 중국式 '냉정한 불 구경' (조선일보 2018.04.13) [8] '孔孟' 아닌 또 다른 중국 (조선일보 2018.05.11) [9] 中 전통 주택에서 드러나는 차별 의식 (조선일보 2018.05.25) [10] '縱的 질서' 되살리는 중국 (조선일보 2018.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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