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中國消息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1] '太平'에 집착하는 중국

바람아님 2018. 6. 22. 09:00

(조선일보 2018.06.22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중국인들은 '비상구(非常口·Exit)'를 한때 '태평문(太平門)'으로 불렀다.

그러나 요즘은 안전문(安全門)이나 긴급출구(緊急出口)로 변했다.

바뀐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내용은 없다.


태평문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온전함을 염원하는 데서 나온 작명이었을 것이다.

저세상으로 떠나는 사람의 시신이 잠시 머무는 안치실을 중국인들은 태평간(太平間)으로 적는다.


이 태평문과 태평간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通過儀禮)를 상정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평안한 곳으로 나아가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가는 통과의 절차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제 안녕을 염원하는 점도 같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중국에는 문신(門神)을 받드는 습속이 발달했다.

집 문 옆에 작은 감실(龕室)을 만들어 출입을 관장하는 신을 모신다.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 평온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문을 나서고 들 때 이 문신에게 향을 올리고 예를 바친다.

그 문신을 향한 염원은 보통 '태평출입(太平出入)'으로 적는다.


중국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태평 시절의 개로 살지언정, 난세의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寧爲太平狗, 不作亂世人)"는 말이다.

전란과 재난에 늘 시달려 온 중국인 특유의 비원(悲願)이자 안정을 향한 강박이다.


비장감까지 주는 위의 몇 사례로부터 우리는 '태평'을 향한 중국인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다.

지독한 애착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중국인의 문화적이면서 집단적인 콤플렉스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문화의 저변을 헤아리면 '비상구'가 왜 '태평문'으로 불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기복과 주술의 음울한 색채 때문에 명칭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전승은 끊이질 않는다.

"안정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고 한 덩샤오핑, '안정 유지(維穩)'를 통치의 핵심 근간으로 내세우는

현재의 중국 공산당 모두 이런 '태평 콤플렉스'의 충실한 계승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