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래를 보려면 중국 역사의 심장부인 역대 도읍을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는 중국몽(中國夢) 달성을 위해 세계의 정점에 있었던 찬란한 과거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중국인은 시안(西安)에서 자부심을 찾고, 뤄양(洛陽)에서 기도하며, 카이펑(開封)에서 기개를 얻고, 항저우(杭州)에선 낭만을 맛보며, 난징(南京)에서 와신상담하고, 베이징(北京)에서 미래를 본다. 왜 그런가.
“중국에 200년을 준다면 뉴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2000년을 준다 하더라도 시안은 만들 수 없다”고 중국인은 말한다. 천년고도 시안에 대한 자부심과 팍스 아메리카나에 맞서는 팍스 시니카의 욕망이 묻어난다. 로마·아테네·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로 꼽히는 시안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곳이다. 서주를 비롯해 진·한·수·당 등 13개 왕조의 수도로 1129년의 세월을 보냈다.
시안은 무왕이 상나라를 멸하고 서주를 세운 이래로 시진핑 국가주석이 열어가는 신실크로드 시대까지 3000년 역사를 품고 있다. “3000년의 중국을 이해하려면 시안을 보라”는 말 만큼이나 시안을 대변하는 것이 “서양엔 로마, 동양엔 장안”이라는 말이다. 중국 역사의 황금기에는 모든 길이 장안으로 통했다.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중앙일보]
2018.06.26 00:23
시진핑의 중국 미래 알고자 하면
중국사 심장부인 옛 도읍을 봐야
겹겹이 포개진 도시 카이펑에서
불요불굴과 자강불식 기개 얻고
모든 것 질서 지우려는 베이징서
세상을 품는 세계의 중심을 꿈 꿔
이유진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시진핑의 중국 미래 알고자 하면
중국사 심장부인 옛 도읍을 봐야
겹겹이 포개진 도시 카이펑에서
불요불굴과 자강불식 기개 얻고
모든 것 질서 지우려는 베이징서
세상을 품는 세계의 중심을 꿈 꿔
중국이 세계에 내놓은 ‘평화·발전·협력·윈윈’이라는 어젠다는 바로 실크로드 정신에서 도출해낸 것이고, 이를 전략적으로 구현하는 게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다. 시안은 또 시진핑의 ‘고향 외교’ 무대다. 아버지 시중쉰이 시안에서 66㎞ 떨어진 푸핑(富平)현 출신이다.
뤄양은 주나라 때 왕권을 상징하는 구정(九鼎)을 안치했던 천하의 중심이었다. 뤄양은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가 신도(神都)라 칭하며 도읍한 곳이기도 하다. 뤄양을 찾기 좋은 때는 ‘뤄양 모란 갑천하(甲天下)’란 찬사와 함께 모란 축제가 열리는 4월이다.
또 뤄양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건 풀코스 연회 요리 뤄양수석(水席)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죄다 탕에 담겨 나오는 요리다. 뤄양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모란, 뤄양수석과 더불어 ‘뤄양 삼절(三絶)’로 칭해지는 용문(龍門)석굴이다. ‘중국 석각 예술의 최고봉’이다. 돌산을 깎아 석굴과 불상을 만든 정성과 노고엔 또 얼마나 많은 바람과 간절함이 깃들었겠나.
한데 용문석굴 곳곳엔 파괴와 약탈의 흔적이 배어 있다. 그 옛날 신앙의 생생한 산물인 부처·보살·제자·역사가 뜯겨 나가 일본·미국·스웨덴·영국·프랑스 등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자치통감』을 편찬한 사마광은 고금의 흥망성쇠를 알고 싶다면 뤄양을 보라고 했는데, 새삼 이 말을 현재적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는 곳이 바로 뤄양의 용문석굴이다.
카이펑은 경제적·문화적으로 찬란했던 송나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세계에 자랑한 4대 발명품 가운데 인쇄술·화약·나침반이 송나라 때 실용화됐다. 안타깝게도 카이펑 유적은 번탑(繁塔)과 철탑(鐵塔)을 제외하곤 지하에 존재한다. 황하의 범람 때문이다.
가장 아래쪽 전국시대 위나라의 대량성(大梁城)을 비롯해 청나라 유적에 이르기까지, 도시 위에 도시가 포개진 카이펑의 지층 단면은 수천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중국인은 카이펑의 겹겹이 포개진 도시가 중화민족의 불요불굴과 자강불식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라고 자부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인도적이고 세련되며 지성적인 사회”라는 디터쿤(Dieter Kuhn)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바로 송나라 카이펑이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가 있다”라는 말처럼 항저우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인간세상의 천당에 비유되곤 한다. 무엇보다도 항저우는 서호(西湖)의 낭만이 깃든 곳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새벽·낮·저녁, 맑은 날과 궂은 날, 시시각각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서호에는 연인들과 혁명가들의 슬프고 비장한 전설과 역사가 가득하다.
난징에선 삼국시대 오나라를 비롯해 동진·송·제·양·진(陳)의 육조 문화가 꽃을 피웠다. 북중국을 유목 민족에게 빼앗기고 강남으로 이주해온 한족 귀족들은 육조 문화의 주역이 돼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대를 열었다. 난징은 무엇보다도 한족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민족의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묻힌 효릉(孝陵)이 난징에 있다. 만주족 왕조를 악마로 규정했던 태평천국의 홍수전은 주원장의 영령 앞에서 이민족을 몰아내고 중국을 되찾겠노라 다짐했다. 제2의 홍수전이 되겠다고 말했던 쑨원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진 뒤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이 됐다.
쑨원이 잠들어 있는 중산릉과 주원장의 효릉 사이에 매화산이 있다. 난징은 매화의 도시다.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매화는 모진 근현대사를 겪어낸 난징을 상징하기에 그야말로 제격이다. 아편전쟁 패배 이후 중국이 외국과 체결한 첫 번째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과 일본이 자행한 난징대학살 등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관통하는 곳이 바로 난징이다. 난징은 한족이 와신상담하던 곳이자 오늘날 중국인 전체의 뼈아픈 기억을 소환하며 민족주의를 추동하는 곳이다.
베이징은 정주세계와 유목세계의 접경이었기에 여러 정복왕조가 중심지로 삼았다. 거란족의 요나라는 베이징을 부도(副都)로 삼았고, 여진족 금나라와 몽골족 원나라는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다. 이들 정복왕조가 북쪽 유목세계를 관할하는 동시에 농경세계를 지배할 거점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 바로 베이징이었다.
이민족 통치자로선 최초로 중국 전역을 차지한 원나라 쿠빌라이는 베이징에 도읍함으로써 정주민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한 한족의 명나라 영락제는 이적(夷狄)을 아우르는 ‘중화의 천자’가 되고자 했다. 이후 만주족의 청나라와 오늘날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베이징은 세상을 품어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다.
베이징에는 모든 것을 질서 지우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베이징을 남북으로 꿰뚫는 중축선이다. 영정문에서 시작된 중축선은 천안문과 자금성을 관통해 신무문을 지나 고루와 종루에 이른다. 중축선을 중심으로 한 베이징의 구조는 세계의 중심인 천자의 지고무상한 권위를 구현한 것이다.
뤄양은 주나라 때 왕권을 상징하는 구정(九鼎)을 안치했던 천하의 중심이었다. 뤄양은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가 신도(神都)라 칭하며 도읍한 곳이기도 하다. 뤄양을 찾기 좋은 때는 ‘뤄양 모란 갑천하(甲天下)’란 찬사와 함께 모란 축제가 열리는 4월이다.
또 뤄양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건 풀코스 연회 요리 뤄양수석(水席)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죄다 탕에 담겨 나오는 요리다. 뤄양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모란, 뤄양수석과 더불어 ‘뤄양 삼절(三絶)’로 칭해지는 용문(龍門)석굴이다. ‘중국 석각 예술의 최고봉’이다. 돌산을 깎아 석굴과 불상을 만든 정성과 노고엔 또 얼마나 많은 바람과 간절함이 깃들었겠나.
한데 용문석굴 곳곳엔 파괴와 약탈의 흔적이 배어 있다. 그 옛날 신앙의 생생한 산물인 부처·보살·제자·역사가 뜯겨 나가 일본·미국·스웨덴·영국·프랑스 등의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자치통감』을 편찬한 사마광은 고금의 흥망성쇠를 알고 싶다면 뤄양을 보라고 했는데, 새삼 이 말을 현재적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는 곳이 바로 뤄양의 용문석굴이다.
카이펑은 경제적·문화적으로 찬란했던 송나라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세계에 자랑한 4대 발명품 가운데 인쇄술·화약·나침반이 송나라 때 실용화됐다. 안타깝게도 카이펑 유적은 번탑(繁塔)과 철탑(鐵塔)을 제외하곤 지하에 존재한다. 황하의 범람 때문이다.
가장 아래쪽 전국시대 위나라의 대량성(大梁城)을 비롯해 청나라 유적에 이르기까지, 도시 위에 도시가 포개진 카이펑의 지층 단면은 수천 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중국인은 카이펑의 겹겹이 포개진 도시가 중화민족의 불요불굴과 자강불식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라고 자부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인도적이고 세련되며 지성적인 사회”라는 디터쿤(Dieter Kuhn)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바로 송나라 카이펑이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蘇州)와 항저우가 있다”라는 말처럼 항저우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으로 인간세상의 천당에 비유되곤 한다. 무엇보다도 항저우는 서호(西湖)의 낭만이 깃든 곳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새벽·낮·저녁, 맑은 날과 궂은 날, 시시각각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서호에는 연인들과 혁명가들의 슬프고 비장한 전설과 역사가 가득하다.
난징에선 삼국시대 오나라를 비롯해 동진·송·제·양·진(陳)의 육조 문화가 꽃을 피웠다. 북중국을 유목 민족에게 빼앗기고 강남으로 이주해온 한족 귀족들은 육조 문화의 주역이 돼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대를 열었다. 난징은 무엇보다도 한족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민족의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묻힌 효릉(孝陵)이 난징에 있다. 만주족 왕조를 악마로 규정했던 태평천국의 홍수전은 주원장의 영령 앞에서 이민족을 몰아내고 중국을 되찾겠노라 다짐했다. 제2의 홍수전이 되겠다고 말했던 쑨원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진 뒤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이 됐다.
쑨원이 잠들어 있는 중산릉과 주원장의 효릉 사이에 매화산이 있다. 난징은 매화의 도시다. 차디찬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매화는 모진 근현대사를 겪어낸 난징을 상징하기에 그야말로 제격이다. 아편전쟁 패배 이후 중국이 외국과 체결한 첫 번째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과 일본이 자행한 난징대학살 등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관통하는 곳이 바로 난징이다. 난징은 한족이 와신상담하던 곳이자 오늘날 중국인 전체의 뼈아픈 기억을 소환하며 민족주의를 추동하는 곳이다.
베이징은 정주세계와 유목세계의 접경이었기에 여러 정복왕조가 중심지로 삼았다. 거란족의 요나라는 베이징을 부도(副都)로 삼았고, 여진족 금나라와 몽골족 원나라는 베이징을 수도로 삼았다. 이들 정복왕조가 북쪽 유목세계를 관할하는 동시에 농경세계를 지배할 거점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 바로 베이징이었다.
이민족 통치자로선 최초로 중국 전역을 차지한 원나라 쿠빌라이는 베이징에 도읍함으로써 정주민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한 한족의 명나라 영락제는 이적(夷狄)을 아우르는 ‘중화의 천자’가 되고자 했다. 이후 만주족의 청나라와 오늘날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베이징은 세상을 품어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다.
베이징에는 모든 것을 질서 지우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베이징을 남북으로 꿰뚫는 중축선이다. 영정문에서 시작된 중축선은 천안문과 자금성을 관통해 신무문을 지나 고루와 종루에 이른다. 중축선을 중심으로 한 베이징의 구조는 세계의 중심인 천자의 지고무상한 권위를 구현한 것이다.
◆이유진
연세대에서 ‘중국 신화의 역사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화의 상징성 및 신화와 역사의 얽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등을 썼다.
이유진 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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