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13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조가비 탈, 동삼동 패총, 국립중앙박물관.
1969년 3월 28일, 윤무병·한병삼 학예관과 김종철 학예사 등
국립박물관 발굴팀은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서 패총(貝塚) 발굴을
시작했다. 정부가 추진하던 '문화유산 종합 조사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해명해볼 참이었다.
1929년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가 이 패총을 발견한 이래 1964년까지
외국인들이 몇 번에 걸쳐 소규모 조사를 진행한 바 있었기에
정밀 조사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발굴에 임했다. 패총은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이 오랫동안 버린 조가비 등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유물이 출토되는 층위(層位)가 중요하다.
밭으로 경작되던 흙을 제거하자 패각층이 나왔고 그 아래에는
검은색 흙이 바다 쪽을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안정적으로
퇴적되어 있었다. 발굴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토기 조각과 함께
조가비 팔찌가 출토됐다. 이날부터 다량의 토기와 골각기, 석기 등이 쏟아졌다.
이듬해 진행된 2차 조사에서 돌로 만든 무덤과 화덕 자리, 일본 규슈서 반입된 조몬(繩文) 토기가 확인된 데 이어
3차 조사가 한창이던 1971년 4월 12일에는 또 다른 중요 유물이 발견됐다.
길이 10.7cm의 가리비에 작은 구멍 2개와 큰 구멍 1개를 뚫어 만든 탈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품 출현에 모두 환호했다.
발굴 후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토기 문화의 선후(先後) 관계가 밝혀졌다.
빗금을 그어 무늬를 표현한 빗살무늬토기보다 그릇 표면에 자그마한 띠를 붙여 무늬를 표현한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가
더 오래된 것임이 층위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그 옛날 동삼동 바닷가에 살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는 그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리고 그들이 고래를 포획하거나 사슴을 사냥했고, 조개로 장신구와 예술품을 만들었으며,
멀리 규슈에 살던 사람들과도 교류했다는 사실이 수천 년 후 발굴 과정을 거쳐 '전격'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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