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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징' 할리데이비슨은 왜 미국을 떠나기로 했나

바람아님 2018. 6. 27. 08:43

머니투데이 2018.06.26. 15:50

 

철강값 상승에, 추가 관세 부과까지..버티지 못하고 국외 생산 결정
美 기업·소비자 피해 확대..트럼프 무역전쟁 명분 약해져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자 성공의 역사를 쓴 기업이며, 일자리 창출의 훌륭한 사례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할리데이비슨에 감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백악관으로 유명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데이비슨의 매튜 레바티 최고경영자와 노조 대표 등을 불러 이같이 말했다. 자신의 '미국 우선주의' 경제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115년 역사의 기업이자 말발굽 소리를 닮은 특유의 엔진음으로 유명한 할리데이비슨을 한껏 치켜세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할리데이비슨 찬가는 불과 1년 4개월여 만에 그대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할리데이비슨이 무역전쟁을 피해 미국 공장을 국외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것. 할리데이비슨은 25일(현지시간) "대안이 없다"며 유럽 수출용 오토바이 생산시설을 미국 밖으로 옮기겠다고 공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해 생산원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이 미국산 오토바이에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연간 약 4만대를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EU의 관세 부과로 대당 가격이 2200달러(약 245만원)가량 더 오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가격 상승분까지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으로 1억달러 가까운 비용부담을 떠안게 됐다. 할리데이비슨 지난해 영업이익의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할리데이비슨 주가는 이날 6% 가까이 급락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할리데이비슨의 공장 이전 결정은 미국과 주요 교역국 사이의 무역 분쟁으로 말미암은 잠재적 충격을 보여주는 현재까지 가장 명확한 사례"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할리데이비슨이 유럽에 백기 투항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싸웠고, 결국 미국 기업은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관세는 단지 할리의 변명일 뿐이다. 참아라!”고 강조했다.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미국 기업들이 버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EU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9배 올리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의 이번 결정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무역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트럼프 행정부에 충격을 줄 전망이다. 지지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최근 무역전쟁 피해를 호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미국 최대 못 제조사 미드콘티넌트 스틸앤드와이어는 최근 노동자 60명을 해고했다. 수입 철강 관세 부과로 제품 가격이 오르자 제품 주문이 끊겨 공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관세가 없어지지 않으면 오는 9월쯤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몰렸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내 대량해고 사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도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수입차 관세는 2.5%로 유럽(10%)보다 낮지만, 인기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만 떼어놓고 보면 오히려 25%로 더 높다. 유럽이 미국산 자동차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SUV나 픽업트럭을 수출하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를 부과한 세탁기의 경우, 미국 내 가격이 17%나 급등해 소비자 피해도 발생했다.


유희석 기자 heesuk@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