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8.07.12. 11:04
조선왕조 500년, 27명의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영조는 83세의 나이에 52년 동안 장기 집권했던 대표적인 국왕이었다. 1776년 봄, 영조가 붕어하자 그 해 3월 영조의 손자로 세손이던 정조가 임금의 보위에 올랐다. 역사적인 장기 집권에서 25세의 젊은 정조의 등극은 국가에 새바람을 일으킬 정도의 큰 변화를 예고하였다. 이때 권력자 홍국영(1748∼1781)이 등장하였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였고, 정조의 아버지 사도제자를 죽이는데 큰 역할을 했던 정조의 정적들을 척결하는 일에 앞장섰던 홍국영은 정조의 큰 신임으로 당대 최고의 권력자의 지위에 올랐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세손이던 정조를 보좌하여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1등 공신이었기 때문에 정조의 집권과 동시에 29세의 젊은 홍국영은 승지와 도승지에 올라 임금의 최측근이 되었다. 또한 궁궐을 지키기 위해 신설한 숙위소(宿衛所)의 대장이 되어 궁궐을 호위하고, 오래지 않아 훈련대장이 되어 나라의 군권까지 장악하여 금위대장(경호실장)까지 겸해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기에 이른다. 정조의 왕권을 보호하고, 정적들을 물리치는 일만 하려던 그의 생각은 바뀐다. 권력을 한 손에 쥐자 권력욕이 발동하면서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원빈(元嬪)으로 삼아 외척의 권한까지 쥐어 하늘을 찌르는 권력자 홍국영이 되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고, 절대로 망하기 마련, 처음에야 자신이 왕위에 오르도록 큰 공을 세운 홍국영을 신임했지만 그의 권력 횡포를 알아차린 영특한 임금, 정조가 그걸 방치할 이유가 없었다. 1779년 9월 26일 31세의 홍국영은 정조 앞에 호출당해 바로 그 시간 이후로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모든 재산까지 몰수당하고, 강원도 강릉 근처에서 방랑하다가 외롭고 쓸쓸하게 34세의 새파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온 세상을 호령하던 권력, ‘천하의 모든 일이 내 손아귀에 있게 되는 날이 왔구나!’라면서 권력에 도취되었던 홍국영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그처럼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권력의 남용을 자제하지 못하는 권력자의 말로는 언제나 그렇게 비참하고 서글픈 것이다. 먼 옛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앞전의 정권에서 권력의 횡포를 부리며 국정을 농단했던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하고 있는지를 보라. 감옥에서 신음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있지 않은가.
2016년 촛불의 힘으로 갑자기 정권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수많은 권력자들이 탄생했다. 과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도 있고, 권력 창출에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새 정권의 권력자가 되는 일에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정조가 홍국영을 믿고 신임하여 권력자로 만들어주었듯이 공이 있고 노고가 많은 사람을 등용함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깊이 생각해야 할 사안이 많다. 과연 나만이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는가. 나만이 대통령선거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오랜 군사독재 시대에 얼마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독재 타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악전고투를 감내해야 했던가를 기억해야 한다. 자기만이 가장 지혜가 있고 공부도 잘했고 능력을 갖춘 사람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 이외에는 자기가 쥔 권력을 쥘 사람이 없다는 자만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도 생각해야 한다. 권력에 도취되어 진짜 권력이 국민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도 되돌아봐야 한다.
그 많은 국민들이 그런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촛불을 들었던 이유가 권력자 몇몇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촛불을 들었을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주변에 나보다 더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했던 사람은 없는가도 돌아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통해서 권력자의 자만과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보다 더 능력 있고, 더 많은 희생을 했고, 더 큰 고통을 겪었던 사람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겸양의 자세로 정정당당한 권력의 행사를 통해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참다운 권력자가 되어야 한다.
새 정권이 탄생한 지 15개월이 다 되어간다. 장관들은 안보이고, 각 부처도 안보이고, 오직 청와대만이 보이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이 정권이 어떻게 해서 탄생된 정권인데, 정권을 잡았다고 권력 향유나 즐긴다면 국민들이 그냥 두고 보겠는가. 더구나 6ㆍ13지방선거로 그처럼 전폭적인 응원을 받았다면 그만큼의 지혜와 능력의 발휘로 국민의 눈높이에 벗어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홍국영의 몰락을 잊지 말자.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며 오만과 자만의 건방은 떨지 말아야 한다. 우연한 행운으로 과분하게 권력의 지위에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겸손한 태도로 능력과 지혜를 총동원해 국민을 섬기는 일에만 온 정성을 바쳐야 한다.
대통령도 진정성을 지니고 잘 하고 있고, 잘 하는 나머지 사람도 많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 정권의 성공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행여라도 잘못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말해주는 충언이다. 권력은 역시 무상한 것이다. 권불 5년이 아닌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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