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40] 4세기 백제의 '제철 단지'

바람아님 2018. 7. 18. 13:20

(조선일보 2018.07.18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2006년 8월 2일 김병희 실장과 조록주 연구원 등 중원문화재연구소 조사원들은 충북 충주시 칠금동 탄금대의 서쪽

사면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그곳에 신축 예정이던 개인주택 부지에서 제철 관련 유물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상부의 교란된 흙을 제거하고 노출하니 철광석, 송풍관 조각, 쇠 찌꺼기 등 제철 관련 유물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유물 포함층을 조심스럽게 걷어내자 철을 제련하던 용해로(鎔解爐) 1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원형을 띤 노의 바닥 지름이 1.6m에 달해 삼국시대 용해로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다.


철정, 탄금대토성, 국립청주박물관.
철정, 탄금대토성, 국립청주박물관.


이듬해 7월에는 탄금대 토성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다. 산상이었지만 곳곳에서 단야(鍛冶) 관련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저수 시설이었다. 이 시설을 인위적으로 폐기하면서 함께 묻은 철정(鐵鋌·덩이쇠) 40개가 발견됐다.

길이가 30cm 내외인 철정 5개가 하나의 단위로 묶인 모습이었다.


2016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칠금동 유적의 성격을 밝히기 위해 10년 전 용해로가 발굴된 곳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

대한 발굴에 착수했다. 좁은 면적을 팠지만 이듬해까지 제련로 12기, 단야로 1기, 철광석 파쇄장 등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학계는 이 발굴을 계기로 칠금동 일대가 4세기 무렵 백제의 핵심 제철 단지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철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무기와 농기구 제작의 필수 소재였기 때문이다.

삼한 사회에서는 변진(弁辰)의 철이 유명해 마한도 사들였다.

특히 백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철의 자체 생산은 불가결한 요소였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근초고왕은 백제를 찾아온 왜의 사신에게 철정 40개를 주며 백제의 풍부한 철산을 과시했다고 한다.

왜가 철을 제련하지 못하던 시절이므로 철정은 매우 귀중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백제의 전성기를 선도하던 근초고왕.

그의 '광폭 행보'에는 칠금동 유적으로 대표되는 제철 단지가 든든한 배경이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