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02. 03:13
사방에서 울리는 찰칵 소리에 관람 예절 무너지는 부작용 생겨
작품은 오랫동안 음미하고 사진은 아껴서 찍는 건 어떨까
파리 시내에 있는 오랑주리(Orangerie) 미술관엔 클로드 모네의 그림 '수련' 여덟 점이 커다란 방 두 개에 나뉘어 걸려있다. '수련' 연작(連作)을 관람객들이 자연 채광 아래서 보기를 원했던 이 인상파 화가는,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연꽃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안식의 공간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모네의 뜻대로 왕궁 정원의 오렌지를 키우던 유리 온실이 미술관으로 개조되었고, 이 미술관의 '수련' 전시실은 타원형 천장 유리로 햇빛이 들어온다.
그러나 요즘 그곳을 가면 평온이나 명상 대신 짜증과 한숨만 밀려온다. 그림 앞에서 너도나도 휴대폰을 들고 인증 샷을 찍는 사람들로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벽면이 커다란 그림 한 폭으로 가득해서 제대로 보려고 조금만 뒤로 물러서도 빈 공간을 노리는 셀카족과 찰칵 소리가 여지없이 끼어든다. 한 시간 넘게 줄 서서 기다렸던 관람객들은 방 가운데 감상용 의자에 앉아 모네 그림들보다 방금 찍은 자기 얼굴이 제대로 나왔는지부터 확인한다.
사람들이 몰릴 때 다른 사람의 감상을 피해 지나가던 관람 예절은 외국 유명 미술관들도 셀카족(族)의 이기심에 무너지고 있다. 다빈치가 그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나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의 상황도 비슷하다. 미술 교과서에서만 봤던 대가(大家)들의 진품을 코앞에서 본다는 흥분은 잠시, 막상 전시실에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이 작품을 등지고 저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표정으로 인증 샷을 찍는다. '비행기 타고 이 먼 곳까지 나도 왔노라'하고.
줄어드는 관람객 숫자에 대한 타개책으로 세계 유명 미술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전시실 내에서 금지하던 사진 촬영을 관람객들에게 허용했다. 뉴욕의 모마(MoMA),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퐁피두센터 등도 휴대폰 카메라로 전시실 내 예술품 촬영을 허용해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미술관들은 전시실 안 사진 촬영이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알지만 다녀간 사람들이 자신의 SNS에 전시 사진을 올려 홍보 효과를 누린다. 국내에서도 한 사설 미술관이 적극적으로 사진 촬영을 허가하면서 젊은 관람객들이 줄 서 기다리는 미술관이 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도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찰칵 소리가 울리는 방 안에서 얼마나 그림에 집중할 수 있을지, 작품을 휴대폰으로 찍어가는 사람들이 집에 가서 다시 보는지 알 수 없다.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가 가져온 변화 중 관광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지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면서 여행지마다 관광객이 늘었다. 유명 관광지들은 다녀간 관광객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들 덕분에 절로 홍보가 됐다. 평범한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 평범한 마을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것에 열중했다.
반면 역효과도 나타났다. 너무 많이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주민들은 불편을 겪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서울의 북촌마을 등 유명 관광지 주민들은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와 생활에 불편을 주자 "관광객들은 집으로 가라"는 구호까지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일부에선 무분별한 관광객 유치를 반대하는 '관광 혐오증(Tourism Phobia)'이 유행하고 있다.
영국 사진가 마틴 파(Martin Parr)는 관광 산업이 갖는 모순을 사진에 담아 우회적으로 대량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는 현대사회를 꼬집었다. 파는 1990년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앞에서 많은 관광객이 똑같은 포즈로 멀리 보이는 기울어진 탑을 자신의 손으로 기대는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또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앞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여줘서 관광객들이 유적에 대한 관심보다 인증 샷에 열중하는 모습을 비판했다. 관광객들이 먹다 버린 감자 튀김을 먹는 갈매기들, 해변 관광지 쓰레기 더미 앞에서 식사하는 가족, 싸구려 기념품들과 요란한 색과 모양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음식들도 파 사진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
여름 휴가철이다. 디지털 사진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가 무한대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마음에 남는 모습이 있다면, 오랫동안 보고 사진은 아껴 찍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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