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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목민심서 '봉공'편 왕역..국가적 재난상황서 현장파견관리의 중요성

바람아님 2018. 8. 14. 06:31
매경이코노미 2018.08.13. 09:33
폭염으로 전국이 몸살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상황관리관을 각 시군에 파견하며 폭염에 대응하고 있다. 공무원을 파견해 현장에서 최대한 시민 목소리를 듣고 지원하기 위함이다.


폭염이나 홍수 등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무원을 현장에 파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시대에도 목민관을 현장에 급파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폭염처럼 특별한 자연재해를 입지 않더라도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목민관을 해당 지역에 파견해 조치를 취했다. 이를 ‘왕역(往役)’이라고 한다. 왕역은 글자 의미대로 일상적인 임무가 아니라 다른 관청이나 지역으로 나가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말한다. 파견근무와 비슷한 의미다.


예나 지금이나 파견근무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공무를 담당하는 목민관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다산 또한 목민심서에서 봉공편 마지막 조항인 ‘왕역’을 통해 파견근무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부에서 차출해 파견하면 받들어 행함이 마땅하다.”

다산은 질병 등 각종 핑계로 파견근무를 거부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가 아니라고 했다.


▶목민관 주요 임무 ‘왕역’

▷다양한 상황에서 파견업무 수행

지금은 대부분 공직 업무가 전산화됐다. 문서를 발송하려면 e메일이나 정부 통신망을 활용하면 간단하다.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사람을 통해서만 문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중요한 공문서라면 목민관이 직접 움직이기도 했다. 다산은 목민관으로서 상부 관청에 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면 가급적 사양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고을 안에 있는 궁묘(宮廟, 궁전·문묘)에 제관(祭官·제사를 맡은 관원)으로 차출되면 마땅히 재계(齋戒)하고 정성을 다해 제향을 모시는 임무를 다하라고 했다.


조선시대 목민관이 파견근무로 자주 차출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과거시험장 감독관이다. 서울에서 온 고시관과 함께 시험 감독을 맡을 때가 종종 있다. 다산은 목민관이라면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정하게 시험을 감독해야 하며 혹여나 서울에서 온 고시관이 부정행위를 한다면 견제해야 한다고 했다. 다산은 보다 자세하고 치밀하게 할 일을 열거했다.

“서울 고관이 보잘것없는 답안지를 뽑으려 하면 다퉈야 하고 좋은 글을 버리려 해도 다퉈야 하고 또 뇌물을 주고받은 흔적이 있어도 다투며 사정(私情)을 둔 흔적이 있어도 다퉈야 한다. 합격자 명단이 하나라도 공도(公道)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어야 그 지방 사람 모두가 그의 명성을 찬양할 수 있다.”


시험 감독관으로 공정성이 결여된다면 과거시험은 시험이라 할 수 없다. 차출된 시험관이라 하지만 왕명을 수행하는 임무인 만큼 본 감독관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공정한 채점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파견근무로 차출되는 또 다른 경우는 사람 목숨에 관계되는 옥사(獄事, 수사·재판)에서 활동하는 검시관이다. 시체를 검시할 때는 정해진 기한 안에 초검·재검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물론 검시관 문제는 현재 목민관에게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지금이야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 따로 있어 행정 업무에 종사하는 목민관이 다루지 않는다. 3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목민관도 수사권이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했던 임무 중 하나였다.

조창(漕倉·세곡을 저장한 창고)에서 조운선(漕運船·세곡 나르는 배)이 출발하는 곳에 차출되거나 중국 등에서 칙사를 영접할 때도 목민관이 파견된다. 무엇보다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다산은 외국 사신에 대해 각별히 예의를 다해 공손하게 맞이하고, 송별하는 일에 조금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류선 실태 파악 중요

▷그들이 보유한 문서 모두 복사해야

해안 지방에 외국 표류선이 정박했을 때도 목민관이 파견된다. 그들이 왜 표류했으며, 어느 나라에서 무슨 일로 항해했는지 등을 소상히 살펴 보고해야 한다.


다산은 “표류선 실태를 파악하는 일은 급하고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니 지체하지 말고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했다. 얼굴 색깔이 다른 외국인은 대부분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과 소통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더구나 간혹 외국인이 침략을 위해 정박한 경우도 있다. 목민관이 능수능란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다산은 표류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5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우선 외국인에게 예의를 지키고 서로 공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방예의지국인 한국과 달리 외국인은 머리칼이 짧고 좁은 옷소매에 야만스럽게 보여 (목민관이)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옳은 자세가 아니다.


둘째, 표류선 안에 있는 문서는 인쇄본이나 필사본을 막론하고 모두 초록해 보고하도록 했다. 양이 많다면 우선 간단하게 초록하고 나머지는 모두 보관해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검토할 수 있게 보관하라고 했다. 과거에 표류선에서 귀중한 도서가 발견됐던 사실을 예로 들면서 보고하기 귀찮아서 버리거나 매장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표류선 문제는 대체로 섬에서 발생한다. 조사관으로 파견됐다고 섬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갑질을 하며 민폐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패악한 조사관 횡포를 무서워하는 섬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표류선이 정박해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넷째, 조선은 3면이 바다인데도 선박 기술은 발달하지 않은 편이었다. 표류선을 만날 때마다 그 선박제도의 도설(圖說)을 상세히 기술하되, 재목은 무엇을 사용했고, 뱃전의 판자는 몇 장을 썼으며 배의 길이와 넓이, 높이는 몇 도나 되며, 배 앞머리의 구부러지고 치솟는 형세는 어떠하며, 돛·돛대·뜸·닻줄의 제도와 상앗대·노·키 모양은 어떠하며 배를 수리하는 법과 날개 널빤지가 파도를 잘 헤치게 하는 기술 등의 여러 가지 묘한 기술을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해 그것을 모방할 계획까지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다산의 실용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인과 대화를 할 때는 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음식과 잠자리 등을 내주며 대접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쪽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면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 표류한 외국 선박 실태를 파악하는 일에도 다산은 정확한 수칙을 열거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방(堤防)을 수리하고 성을 쌓는 일에 파견근무로 차출되는 경우가 있다. 주로 공사 감독 업무를 맡는다. 이때 다산은 힘들게 일하며 고생하는 백성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는 일부터 하라고 당부한다. 하천을 준설하고 성을 쌓는 일은 모두 군현의 백성을 부역시켰고 그들의 노력으로 일을 마친다. 백성은 이 같은 일을 매우 고달프고 고통스럽게 여겼다. 그들을 위로하고 늙고 여윈 사람은 부역을 면해 돌아가게 조치하며 굶주리거나 넉넉한 사람을 구별해 부담을 고르게 할 필요가 있다. 큰 공사에 앞서 백성 마음을 얻는 일을 먼저 하라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다.


다산은 송나라의 유명한 학자·관인이던 정백자를 예로 들었다.

“정백자가 현령이 돼 부역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을 때, 심한 추위와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갖옷을 입거나 일산을 받치는 일이 없었다.”

감독관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백성과 동고동락하며 그들 마음을 위로하고 행동을 함께하면 어떤 백성이 기쁘지 아니할까.

공직자라면 부역하는 인부와 함께하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명하고 훌륭한 목민관은 백성을 대하는 자세로부터 만들어지는 법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0호 (2018.08.08~08.14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