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2018.08.23. 17:32
베네딕트 아널드는 미국에서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가 처음부터 변절자는 아니었다.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군과 맞서 싸우던 미 대륙군의 장군으로 독립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신뢰도 두터웠다. 필라델피아 타이콘데로가 요새를 빼앗긴 직후 아널드가 사임을 청했을 때 워싱턴이 반려할 정도였다. 하지만 군 내부 갈등과 거대한 빚이 그를 시련에 빠뜨렸다. 영국군의 유혹이 시작됐고 급기야 1780년 웨스트포인트 요새를 적군에 넘기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음모가 발각되면서 유망한 장군은 한순간에 매국노로 전락했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는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자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맹비난하며 아널드에 비유하기도 했다.
배반은 종종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아케치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은 후일 조선에 전쟁의 피바람을 몰고 오는 서막이 됐고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줬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겨냥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비수는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는 현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유신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끼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구였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법정 진술로 궁지에 몰렸다. 코언이 뉴욕 연방법원에 출석해 대선 기간 성 추문 확산을 막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한 포르노 배우 등에게 돈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10년 넘게 곁에 뒀던 충복의 배신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형 악재를 안겨줬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쌓은 신뢰의 탑은 모래성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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