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8-11-18 11:08
“충정공 민영환 동상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113주기 맞는 민영환 동상 제자리 찾기에 나선 정윤재 교수
113주기 맞는 민영환 동상 제자리 찾기에 나선 정윤재 교수
[조영철 기자]
서울 충무로는 이순신의 시호 충무공에서 이름을 따 지은 도로다. 그럼 ‘주간동아’ 사무실이 위치한 충정로는?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하고자 자결한 계정 민영환(桂庭 閔泳煥·1861~1905)의 시호 충정공에서 따온 것이다.
충무공의 동상은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다. 최근 관광지로 떠오른 전남 여수 구시가지 로터리에도, ‘다찌집’으로 뜨고 있는 경남 통영 이순신공원에도 있다. 현충사가 있는 충남 아산시 신정호에도 대형 동상이 새로 들어섰다. 그럼 11월 30일로 서거 113주기를 맞는 충정공의 동상은 어디에 있을까.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초입에 자리한 우정총국 건물(사적 제213호) 뒤쪽에 딸린 작은 공원 후미진 곳에 세워져 있다. 아마 전국에 딱 하나 있을 텐데, 조계사를 찾는 신도들도 충정공 동상이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외진 곳이다.
11월 14일 오전 기자가 찾아갔을 때 동상 주변은 노숙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벌써부터 술 냄새가 진동했다. 동상 뒤편으로 그들 소유인 듯한 간이침구가 쌓여 있었다. 얼핏 지린내가 난다 싶었는데, 동상 뒤 담벼락이 그들의 공중화장실로 쓰이고 있음을 목격했다.
대한제국이 수수깡으로 지은 집처럼 무너질 때 500년 왕조를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의 동상이 이렇게 수모를 겪어도 되는 걸까. 이 참담한 모습을 제보한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부터 이 동상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내력을 들었다.
지린내 맡으며 방치된 동상
충정공 민영환 동상이 위치한 서울 견지동 우정총국 건물 뒤쪽 공원 담벼락에 볼 일을 보고 있는 노숙자. [조영철 기자]
“원래 이 동상은 1957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 로터리 한복판에 세워졌습니다. 세종로 사거리에 충무공 동상을 세운 것처럼 말이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젊은 시절 감옥에 갇혔을 때 그를 빼내 미국으로 보내준 은인이 민영환 선생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박정희 정부 시절 야당인 신민당 당사가 안국동에 들어서면서 반정부 시위대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권에 밉보여 1970년 도로 확충을 명분 삼아 창덕궁 돈화문 앞으로 쫓겨났죠. 거기만 해도 오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궁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2003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광복 후 해외 독립운동을 이끌던 임정 인사들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3의사(義士)의 기치를 높였다면 국내 독립운동가들은 계정의 고귀한 희생을 가장 먼저 챙겼다. 서대문과 마포를 잇는 도로의 이름을 충정로로 기념했던 게 광복 후 1년도 안 된 1946년 미 군정기였다. 충정로 인근 아현동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 자리에 계정의 별장이 있었다. 또 1947년 위당 정인보, 민세 안재홍, 우사 김규식 등 3명이 힘을 합쳐 계정의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추모사업을 추진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광복 후 해외 독립운동을 이끌던 임정 인사들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3의사(義士)의 기치를 높였다면 국내 독립운동가들은 계정의 고귀한 희생을 가장 먼저 챙겼다. 서대문과 마포를 잇는 도로의 이름을 충정로로 기념했던 게 광복 후 1년도 안 된 1946년 미 군정기였다. 충정로 인근 아현동의 주한 프랑스 대사관 자리에 계정의 별장이 있었다. 또 1947년 위당 정인보, 민세 안재홍, 우사 김규식 등 3명이 힘을 합쳐 계정의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추모사업을 추진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위당, 민세, 우사가 모두 6·25전쟁 때 납북돼 유명을 달리하면서 추모사업도 동력을 잃었다. 그나마 1955년 민충정공기념사업회가 재결성돼 ‘민충정공유고’(전 5권) 번역이 이뤄졌다. 학계에서도 동상 건립 운동이 일어 이승만 정부 시절 안국동 로터리에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이후 명맥이 끊기면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정 교수가 이런 실태를 파악하게 된 것도 최근이다. 3년 전 ‘고종시대 정치 리더십’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계정의 리더십 연구를 위해 유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연구 성과를 담아 2017년 발간된 책을 유족에게 전달하면서 계정이 홀대받고 있음에 눈 뜨게 됐다고 한다.
정 교수가 이런 실태를 파악하게 된 것도 최근이다. 3년 전 ‘고종시대 정치 리더십’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계정의 리더십 연구를 위해 유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연구 성과를 담아 2017년 발간된 책을 유족에게 전달하면서 계정이 홀대받고 있음에 눈 뜨게 됐다고 한다.
“민영환 선생의 업적 가운데 하나가 1900년 조성한 남산의 장충단입니다. 당시 표훈원(현 국가보훈처) 총재였던 그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을미사변 때 순국한 장졸들을 위해 봄과 가을마다 제를 지내려고 조성한 곳입니다. 일제가 이곳을 가만뒀을 리 만무하죠. 조선 왕실의 궁궐인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전락시켰듯이 1919년 제단을 없애고 장충단공원을 조성했습니다. 1932년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 박문사를 짓고 1937년엔 상해사변(上海事變) 당시 일본군 결사대로 전사한 육탄삼용사의 동상을 세웠죠. 그나마 황태자 시절 순종이 전서체로 직접 쓴 ‘奬忠壇’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그 비석 뒤에 비 조성 경위를 쓴 글은 민영환 선생이 직접 쓴 것인데 지금은 대부분 마모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충신으로 역사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계정의 자취가 이렇게 잊히고 유실된 채 방치돼도 괜찮은 것일까.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둔 정 교수가 발 벗고 나선 이유도 거기 있다.
“충정로 또는 장충단으로 이전하자”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단공원 내 장춘단비. 황태자 시절 순종이 쓴 전면의 전서체 글씨는 남아 있지만 장충단 조성 경위를 밝힌 충정공 민영환의 글씨는 대부분 마모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사진 제공 · 정윤재]
“그 인물을 헌창하고 뜻을 기리고자 세운 동상이라면 마땅히 공공장소에 우뚝 서 있어야 합니다. 민영환 동상 역시 그분의 뜻을 기리려 한다면 제대로 된 곳에 다시 세워야 합니다. 선생의 전동(현 견지동) 자택엔 조계사가 들어섰고 선생이 자결했던 공평동의 청기지 이완식 집터에도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선생의 시호를 딴 충정로 한복판에 세우거나 남산 장충단에 세워드려야 합니다. 장충단을 복원할 경우 거기에 민영환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검토해봐야 합니다.”
다행히 계정의 유물은 고려대박물관에 잘 보존돼 있다. 계정의 피 묻은 옷을 걸어둔 전동 집 방바닥에서 자라나 ‘혈죽(血竹)’으로 불린 대나무를 비롯해 충정공이 착용했던 대한제국 군복과 흉배, 대리석 소금함 등이다. 계정의 손자로 고려대 교수 출신인 민병기 전 국회의원이 일찍이 기증한 유물들이다.
충무공과 충정공. 공훈의 무게를 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충무공의 백분지일에 해당하는 관심이라도 충정공에게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즉사 사즉생’이란 충무공의 유훈은 충정공의 유서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다행히 계정의 유물은 고려대박물관에 잘 보존돼 있다. 계정의 피 묻은 옷을 걸어둔 전동 집 방바닥에서 자라나 ‘혈죽(血竹)’으로 불린 대나무를 비롯해 충정공이 착용했던 대한제국 군복과 흉배, 대리석 소금함 등이다. 계정의 손자로 고려대 교수 출신인 민병기 전 국회의원이 일찍이 기증한 유물들이다.
충무공과 충정공. 공훈의 무게를 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충무공의 백분지일에 해당하는 관심이라도 충정공에게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즉사 사즉생’이란 충무공의 유훈은 충정공의 유서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대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諸公)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단지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다행히 동포형제들은 천만 배 더욱 분려(奮勵)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46호에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4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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