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페리 포르셰
창업자인 아버지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10대에 전기회사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한 이후 20세기 초반 독일의 자동차 업계를 선도해온 명장이었다. 국민차 ‘비틀’도 그의 작품이다. 히틀러의 의뢰로 만들어졌다는 이 차는 누구나 인정하는 자동차의 슈퍼 베스트셀러다.
시대를 무시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전투용 장갑차를 만든 이유로 전범으로 수감되며 페리가 포르셰를 이끌어가게 된다. 기술력이 있었지만 포르셰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회사는 아니었다. 1939년 ‘포르셰 64’ 이후, 부자는 끊임없는 노력과 기술 개발로 획기적인 디자인과 성능의 명작을 연이어 만들며 회사를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켜 나갔다.
‘자동차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아우토슈타트는 폴크스바겐 본사와 함께하는 대규모 자동차 박물관 겸 테마파크이다. 폴크스바겐은 물론 벤틀리, 아우디, 람보르기니 등 세계적인 명차의 브랜드 전시관이 있다. 각 브랜드는 회사의 명예를 걸고 눈부신 동영상에서 아이디어 넘치는 체험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자동차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아우토슈타트에서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은 것은 페리의 저 한마디였다. 문학적인 명문장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자신의 작품인 자동차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이 브랜드가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곳인지, 넘치는 자신감으로 풀어낸 짧지만 강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필자에게는 하는 일이 혼란스럽고 기운이 빠질 때 죽비로 어깨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들게 하는 명징한 한마디이다.
서현정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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