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29 윤희영 편집국 편집위원)
'Turn Toward Busan(부산을 향하여)'이라는 국제 추모행사(international memorial ceremony)가 있다.
캐나다의 6·25전쟁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89)씨가 2007년 제안, 21개 참전국에서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한국 시각) 2300여 명의 전몰장병(fallen soldiers)이 안장돼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 쪽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한다(pay a silent tribute). 2008년부터는 국가보훈처가 유엔기념공원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다음은 커트니씨가 국내 한 영자신문에 보내온 기고문 요지.
"지난 11일 부산 행사에서 내 이름이 불려졌다는 축하 인사를 받고 멍한 느낌이 들었다(feel foolish).
내가 행사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참전용사는 단 한 명도 초청을 받지 못했다.
한국의 국가보훈처(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가 올해는 연로한 참전용사들을 제외하고
(exclude the aging war veterans from participating), 그 자리에 전사자 유족들을 초청했다.
진실로 비통해하는 유족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데 반대하는(be object to giving up his place to a bonafide
grieving family member) 참전용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훈처가 참전용사들을 배제한 것은 중대한 실수(major error)다. 유족들은 참전용사들보다 훨씬 젊다.
게다가 상당수는 가까운 가족이 아니라 먼 친척(distant relative)이다. 6·25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야 태어났다.
전몰장병을 생전에 만나본 적도, 그들의 죽음을 실제로 슬퍼해본(actually grieve for the war dead) 적도 없다.
물론 그들의 참석도 전몰장병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전하는 데(perpetuate the memory of those who fell in the war)
도움은 될 터다. 하지만 세대가 다른 먼 친척보다는 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갔던(go together into
the battlefield at the risk of their lives) 참전용사들이 그들과 더 가까웠다.
80대 후반이 된 참전용사들은 갈수록 빠르게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die at an accelerating rate).
일부는 더 늦기 전에 한국 재방문 프로그램에 포함될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wait anxiously for an opportunity t
o be included in the Revisit Korea Program). 부산 추모행사에 다녀간 뒤 이듬해까지 생존하지(survive for another year)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외국 참전용사들을 놀라울 만치 잘 대우해줬다(treat veterans from foreign lands marvelously well).
그래서 전 세계 참전용사들과 가족, 그들의 정부는 대단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be enormously thankful for it).
그런데 이제는 참전용사들을 초청 대상에서 제외한다니, 이는 그들이 잊혀감을 암묵적으로 의미한다(tacitly imply).
재고해야 한다(have a rethink). 그들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should never be forgo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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