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01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험프리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아십니까.
생전(生前) 주소는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오랜 세월 세 명의 영국 총리와 함께 살았는데,
그중에는 보수당 대처와 노동당 블레어도 있습니다.
학자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험프리의 사진을 보여주고, 좋은지 싫은지를 물었죠.
'대처의 고양이'라고 설명했을 때 험프리는 보수당 유권자들의 44%, 노동당 유권자들의 21%
지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블레어의 고양이'라고 설명했을 때는 보수당 유권자 27%, 노동당 유권자 37%였습니다.
험프리는 두 마리였던 걸까요.
시계 방향을 지금으로 돌리죠. 이번 주 뉴스 중 하나는 대륙에서 불어왔습니다.
중국 최대 자본가인 마윈이 알고보니 공산당원이었다는 것. 알리바바
그룹 전(前) 회장, 잡지 포브스 표지에 실린 첫 중국 부자가 사실은 중공당원(中共黨員)이라는 거죠.
험프리의 질문을 빗대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중국이 그럴 줄 알았다는 쪽입니까, 아니면 깜짝 놀랐다는 쪽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놀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왜 이 팩트를 지금에야 공개하는지 배경이 궁금하다는 쪽입니까.
마윈처럼 부자가 되려면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뜻일까요,
혹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일까요. 물론 둘 다일 수도 있죠.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탐험가이자 작가인 리처드 버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실은 수만 조각으로 깨진 거울인데, 사람들은 내 작은 조각이 전체인 줄 아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은 체코 총리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때 강조한 말.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에 있고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부메랑처럼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작년 6월 탈원전을 선언하며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한 당사자가 문 대통령 아닙니까.
국내에서는 원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체코에 가서는 '안전한 한국 원전'이라고 세일즈하는 아이러니.
어쩌면 버턴의 수만 조각 깨진 거울 이론을 스스로 실천 중인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는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것은 생각의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는.
'이기적 진실' '주관적 진실' '확증 편향'도 다 같은 의미죠.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이런 선택적 지각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편을 들자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자는 거죠.
다시 험프리로 돌아옵니다. 당신은 어느 팩트를 선택하며 세상을 바라봅니까.
블로그내 같이 읽을 거리 : [다시 읽는 명저] "이념에 갇힌 권력이 민주주의 위기 가속" (한국경제 2018.11.01) "나는 정의롭다" 외치는 사람들이 만드는 지옥 (조선일보 2018.11.17)
[서평] 파시즘 A WARNING (매일신문 2018-11-21) 파시즘/ 매들린 올브라이트 지음/ 타일러 라쉬·김정호 옮김/ 인간희극/ 336쪽/ 1만8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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