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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友야담] 사람들은 내 작은 진실이 전체인 줄 아네

바람아님 2018. 12. 1. 20:17

(조선일보 2018.12.01 어수웅·주말뉴스부장)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어수웅·주말뉴스부장


험프리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아십니까.

생전(生前) 주소는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오랜 세월 세 명의 영국 총리와 함께 살았는데,

그중에는 보수당 대처와 노동당 블레어도 있습니다.

학자들이 실험을 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험프리의 사진을 보여주고, 좋은지 싫은지를 물었죠.

'대처의 고양이'라고 설명했을 때 험프리는 보수당 유권자들의 44%, 노동당 유권자들의 21%

지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블레어의 고양이'라고 설명했을 때는 보수당 유권자 27%, 노동당 유권자 37%였습니다.

험프리는 두 마리였던 걸까요.


시계 방향을 지금으로 돌리죠. 이번 주 뉴스 중 하나는 대륙에서 불어왔습니다.

중국 최대 자본가인 마윈이 알고보니 공산당원이었다는 것. 알리바바

그룹 전(前) 회장, 잡지 포브스 표지에 실린 첫 중국 부자가 사실은 중공당원(中共黨員)이라는 거죠.

험프리의 질문을 빗대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중국이 그럴 줄 알았다는 쪽입니까, 아니면 깜짝 놀랐다는 쪽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놀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왜 이 팩트를 지금에야 공개하는지 배경이 궁금하다는 쪽입니까.

마윈처럼 부자가 되려면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뜻일까요,

혹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일까요. 물론 둘 다일 수도 있죠.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탐험가이자 작가인 리처드 버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실은 수만 조각으로 깨진 거울인데, 사람들은 내 작은 조각이 전체인 줄 아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은 체코 총리와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때 강조한 말. "한국은 현재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에 있고 지난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부메랑처럼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작년 6월 탈원전을 선언하며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고 한 당사자가 문 대통령 아닙니까.

국내에서는 원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체코에 가서는 '안전한 한국 원전'이라고 세일즈하는 아이러니.

어쩌면 버턴의 수만 조각 깨진 거울 이론을 스스로 실천 중인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는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것은 생각의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는.

'이기적 진실' '주관적 진실' '확증 편향'도 다 같은 의미죠.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이런 선택적 지각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편을 들자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자는 거죠.

다시 험프리로 돌아옵니다. 당신은 어느 팩트를 선택하며 세상을 바라봅니까. 




블로그내 같이 읽을 거리 :


[다시 읽는 명저] "이념에 갇힌 권력이 민주주의 위기 가속"   (한국경제 2018.11.01)
움베르토 에코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http://blog.daum.net/jeongsimkim/33594 


"나는 정의롭다" 외치는 사람들이 만드는 지옥  (조선일보 2018.11.17)
자기만 옳다는 믿음 가진 시대… 정의의 '가면'을 쓴 것에 불과
분풀이성 감정 배설에 악용도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정지영 옮김|샘앤파커스|264쪽|1만4800원
http://blog.daum.net/jeongsimkim/33653 


우리가 믿는 진실은 아흔아홉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조선일보 2018.11.24)
사회 곳곳서 '팩트'란 이름으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진실을 편집
무엇이 진짜인지 밝히기보다 어떤 진실 택할 것인지 고민해야
만들어진 진실|헥터 맥도널드 지음|이지연 옮김|흐름출판|416쪽|1만6000원
http://blog.daum.net/jeongsimkim/33734


[서평] 파시즘 A WARNING  (매일신문 2018-11-21)

파시즘/ 매들린 올브라이트 지음/ 타일러 라쉬·김정호 옮김/ 인간희극/ 336쪽/ 1만8000원
http://blog.daum.net/jeongsimkim/33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