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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마음읽기] 멋진 인생 선배가 되는 데도 노력은 필요하다

바람아님 2018. 11. 29. 09:56

(조선일보 2018.11.29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과거 향수 담긴 오랜 음식점이 젊은 마니아들을 끌어당기듯
자랑 삼가고 후배 말도 傾聽해야 '인기 있는 웃어른' 될 수 있어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감자칩을 먹을 때 눅눅하면 맛이 없다. 바스락하며 소리가 나야 제맛이라 느껴진다.

그럼 이때 맛은 미각인가, 청각()인가. 상식적으로 맛은 혀로 느껴지는 미각(味覺)이다.

그런데 눅눅한 감자칩을 먹을 때 헤드폰을 통해 바스락 소리를 들려 주었더니 눅눅한 감자칩도

맛있게 느껴졌다는 연구가 있다. 혀가 아닌 귀로 맛을 느낀 셈이다.

후각(嗅覺)은 미각 이상으로 맛을 감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음식을 먹기 전 그리고 목 뒤로 넘기면서 2번 강하게 맛을 느낀다.

지글지글 부쳐질 때 고소한 냄새가 나는 빈대떡집을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것도, 코감기에 걸리면 이상하게

맛이 잘 안 느껴지는 것도 후각 때문이다.

뚜껑이 덮인 일회용 컵보다 위가 뻥 뚫린 머그잔이,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만,

코로 느끼는 커피향도 더 잘 즐길 수 있게 한다.


시각도 큰 역할을 한다.

조명을 어둡게 해 맛있게 식사를 하게 한 후 불을 켰을 때 음식에 파란 빛깔이 돌도록 한 연구에서

사람들이 구토를 느꼈다고 한다. 파란색은 음식이 상했다는 메시지를 주기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파란 접시가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이렇게 오감(五感)이 맛에 관여하다 보니, 나오는 식사에 따라 테이블의 모양이 변하며 자동으로 향이 분무되고,

음식을 일반 식기가 아닌 특별히 디자인된 접시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활용하여 서비스하고,

심지어 음식이 맛있게 찍힐 각도로 스마트폰 거치대를 식기 끝에 만들어 놓아 눈으로 먹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을

적극 돕는 첨단 음식점도 있다. 상상만 해도 대단한데, 약간 피곤하다는 생각도 든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디지털 음원(音源)으로 주로 음악을 즐기는 시대에 사라져버릴 줄 알았던 '레코드판'이 다시 뜨고 있다.

레코드판 세대가 향수를 못 잊어서 다시 찾아서인가 싶었는데,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을 보면 그 반격을 이끄는 세대는

젊은 층이다. 실제로 레코드판 전문점에 가보면 젊은 층이 주 고객이다.

연인들이 레코드플레이어에 앞에서 헤드폰을 끼고 다정히 음악 감상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맛'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식과 관련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검색을 해보면, 노포(老鋪=오래된 가게) 마니아들이 눈에 뜨인다.

최소 20년에서 심지어는 90년이 된 노포, 즉 오래된 가게들만 찾아다니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인데,

자기 나이보다 더 오래된 가게들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상당수다.

5년 전만 해도 노포에서 회식하자고 하면 싫어하는 젊은 후배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인기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원래 그곳이 단골이었던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 자리가 없다며 불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첨단 음식점과는 반대로 과거의 향수가 담긴 노포에서 젊은 층이 새로운 맛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뉴트로'는 뉴(new)와 레트로(retro)의 합성어라 한다.

젊은 세대에겐 복고 문화가 향수가 아닌 새로운 문화 경험이라는 것인데 일리가 있다.

뉴트로가 유행이라니, 올 한 해도 훌쩍 지나가고 곧 한 살 더 먹어서인가,

노포처럼 나이 들수록 후배들에게 인기 좋은 선배가 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선배, 동갑친구도 좋지만

나이 들어 좋은 후배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내 삶을 더 젊고 에너지 넘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젊은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노포(老鋪=오래된 가게) 같은 인생선배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의 성공한 리더 200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어른의 의무'란 책을 보면

후배의 존경을 받아 행복한 어른의 공통점이

'잘난 척하지 않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다.

상식적으론 자신의 조언에 후배들이 "잘 알겠습니다"고 큰 소리로 반응할 때 '내가 존경받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데 사실은 후배의 그런 긍정적인 반응은 선배의 잔소리를 최단시간에 끝내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젊은이를 만날 때 신세 한탄하지 않고, 자기 자랑하지 않고, 긍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는 어른 인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시간은 짧고 할 말은 많다'란 유전자가 우리 몸에 있다고 한다.

잔소리는 본능이니 그 자체를 탓할 순 없지만 사랑받는 선배가 되려면 잔소리는 줄이고 공감 소통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송년회 등으로 인생 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시즌이다.

맛있는 노포처럼 멋있는 선배가 되어 보면 어떨까. 



 어른의 의무

 (어른의 노력이 모든 것을 바꾼다)
 야마다 레이지/ 김영주/

 북스톤/ 2017/ 215 p
 199.1-ㅇ258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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