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12.07. 00:34
진짜 현실의 문제에서 멀어져
생각하지 않는 사회 막으려면
스마트폰의 폐해 심각히 봐야
지하철을 탈 때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광경을 본다. 한국인들은 주변 사람과 ‘절연’된 상태로 있고 싶어하는 듯하다. 게임에 몰입하거나 초콜릿 케이크나 유행하는 옷이 등장하는 사진들을 빠르게 넘긴다. 동영상을 보는 이도 많다.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를 다룬 책을 읽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들은 한국이 기후변화 위기와 미국·러시아·중국 사이의 핵무기 경쟁이나 핵전쟁 위험에 대응하는 방법에 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엔터테인먼트 콘텐트처럼 취급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돼 있다. 최근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복잡한 지정학적 문제를 알려는 노력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기환경을 일례로 보자. 나는 한국인들이 자신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과 고통을 느낀다. 심지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한국과 중국의 미세 먼지 배출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모르거나, 한국과 중국의 산업 규제 완화에 대해 소비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현상이 마치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잡글’처럼 개별 요소로 분해돼 복잡한 현상을 분석하는 능력이 머릿속에서 형성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스마트폰이 미래 사회에 끼치는 역할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많은 전문가가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무한한 양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잘 대응하게 해 삶을 보다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민주주의의 확장에도 기여한다. 2010년 아랍권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은 스마트폰이 대중에게 선사한 ‘정보의 민주화’가 촉발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촛불혁명’도 비슷한 흐름 중 하나다.
그러나 핵심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확산하는 정보가 질적으로 과연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가. 현재 한국의 기성세대는 스마트폰 없이도 대학 내에서만큼은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청년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스마트폰이 주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무능을 밝히는 ‘스마트 촛불’은 미래엔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이었던 니컬러스 카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의 뇌를 재프로그래밍하고 신경계의 빠른 반응을 부추기지만, 사색과 깊은 사고를 어렵게 만드는 패턴에 뇌가 익숙해지게 한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의 임박한 위기를 파악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시민들이다. 그들이 주류가 돼 사회를 운영하게 된다면 한국은 점점 더 악몽의 세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즙이 가득한 한 꽃에서 다른 꽃으로 옮겨가는 나비처럼 하나의 자극적 이야기에서 다음 이야기로 흘러가는 일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지만 정확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의 행동과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으며, 어떻게 이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 없이 그저 막연한 의식을 가진 채 ‘읽기’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세상 인식 방법을 바꿀 수 있는 특정 기술이 민주적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지고, 그 분석에 따라 그 기술 확산 문제를 어떻게 통제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복잡한 사회·경제·정치적 변화들을 이해하는 능력조차 없이 소셜미디어에서 최신 유행의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이뤄지는 투표로는 발전할 수 없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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