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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한·미 동맹 우려 안긴 '매티스의 퇴장'

바람아님 2018. 12. 26. 09:25

중앙일보" 2018.12.25. 00:16

 

트럼프의 동맹 파기 막을 보루 사라져
북핵 여전한데 방패만 없어져선 안 돼
남정호 논설위원
지난 20일 사표를 던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여러 번 한국 편을 들어준 한·미 동맹의 숨은 수호자다. 그는 북핵 위기가 절정이던 지난해 12월, 트럼프가 주한미군 가족들을 대피시키려 하자 기를 쓰고 막았다. 북한이 북폭의 전조로 여겨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그해 9월,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깨겠다고 펄펄 뛰자 백악관 참모들은 즉시 국방부에 있는 매티스에게 SOS를 쳤다. 트럼프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참모가 그였던 까닭이다. 백악관으로 달려간 매티스는 온갖 이유를 대며 한·미 FTA를 깨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한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두는 데 왜 미국이 10억 달러나 쓰냐”며 더 흥분했다. 매티스는 이에 “한국을 돕는 게 우리 자신을 돕는 일”이라고 설명해 위기를 넘게 했다. 동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매티스다. 그가 트럼프에게 보낸 사퇴의 편지도 “동맹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게 핵심 메시지였다.


이런 매티스가 물러났다. 동맹을 헌신짝처럼 내버릴 트럼프를 막을 최후의 보루가 없어진 것이다. 그간 트럼프는 수없이 동맹을 깨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 7월에는 유럽 동맹국들에 “국방비를 안 올리면 나토에서 빠지겠다”고 위협했다. 주한미군 철수가 당장 결정돼도 놀랄 일이 아닐 정도다.


안보는 공기와 같다. 있으면 소중한 줄 모른다. 65년간 있어 온 한·미 동맹이라 장점보다 허물이 부각된 느낌이다. 한·미 동맹은 전형적인 비대칭 관계로 이에 따른 폐단도 없진 않다. 비대칭 동맹에선 약한 나라는 안보를 얻는 대신 강대국의 간섭을 받기 마련이다. 한·미 동맹 탓에 한국이 미국에 휘둘려 왔다는 비판에 어느 정도 진실은 담겨 있다.


하지만 그저 나쁘게만 봐선 곤란하다. 그간의 이득은 손해를 덮고도 남는다. 주한미군 덕에 북한은 물론 중국·소련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아낀 국방비도 천문학적이다. 2011년 연구에 따르면 미군 철수 시 이만한 전력을 갖추기 위해선 23조~36조원이 든다고 한다. 또 주한미군이 없었다면 외국인 투자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낮은 신용등급 탓에 해외 금융기관에서 돈 빌리는 것조차 어려웠을 거다.


물론 공동의 적이 없어지면 어떤 동맹이든 사라지거나 변하는 게 마땅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버리고, 진실로 평화를 추구한다면야 한·미 동맹의 해체나 새 역할을 고민하는 게 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라. 비핵화를 약속했던 북한이 그동안 뭘 했는지. 실험장 한두 개를 닫았을 뿐 핵무기 하나 없애지 않았다. 북한의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미 동맹이란 방패가 사라지면 어찌할 건가.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동맹에만 기대는 외교 노선에 비판적이었다. ‘자주외교’란 이름 아래 미국 영향권에서 벗어나 중국과 가깝게 지내려 했다. 이랬던 그도 늦게나마 옛 전우의 소중함을 절감한 모양이다. 그는 지난 20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선 “한·미 동맹을 더욱 튼튼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23일 밤 트럼프는 매티스의 편지를 염두에 둔 듯한 섬뜩한 트윗을 날렸다. “동맹은 몹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를 이용해 먹지 않는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어느 나라를 겨냥한 건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아니라는 법도 없다. 빙산이 쪼개지듯, 한·미 동맹이 금가는 소리로도 들린다. 이러다 북핵은 없애지 못한 채 한·미 동맹만 깨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