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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42] 학문의 분류

바람아님 2013. 12. 3. 09:07

(출처-조선일보 2013.12.03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우리나라 고등교육 통계정보 관련 기관들이 각기 다른 교육편제 단위 체계를 사용하고 있어 그에 따른 전산 코드도 제각각이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대학과 유관 기관이 공통으로 쓸 수 있는 단일 분류 체계를 개발하여 배포했다. 정보의 효율적인 생산과 운용을 도모한다는 취지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자칫 학문의 균형 발전을 해칠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

"표준 분류 체계는 이상적인 학문 분류 체계를 의미하지는 않음"이라고 전제하지만, '효율성'과 '신뢰성'에 앞서 '타당성'이 먼저 검증되었어야 한다. 분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융합과 통섭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체계의 수립은 애당초 불가능했는지 묻고 싶다. 자연과학 대계열에서 화학과 생명과학을 한데 묶은 것은 참신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다시 화학·생명과학·환경학으로 나누는 과정은 스스로 세운 유사성·배타성·포괄성의 기준을 줄줄이 위배한다.

"물질의 성질·조성·구조 및 그 변화를 탐구하는 화학 영역,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생명과학 영역, 지구 상의 자연과 환경 문제를 연구하는 환경 영역으로 구분된다"고 했는데 정작 중계열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자연과 환경 문제'는 생명과학과 환경학 영역 양쪽에 엉거주춤 걸쳐 있어 결국 양쪽 모두에서 대접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생명과학은 본래 생물의 구조 및 기능을 연구하는 '기능생물학'과 생태와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으로 나뉜다. 명문 예일대와 프린스턴대에는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과(Department of Ecology and Evolutionary Biology)'가 따로 있다. 어차피 우리나라의 생명과학은 대체로 화학을 기반으로 한 생물학인 만큼 이참에 환경학은 공학 대계열의 환경공학에 연계시키고, 화학, 생명과학(또는 아예 화학생물학), 생태학으로 분류할 것을 제안한다. 수학·물리·천문·지구 영역에서 지구과학이 그렇듯이, 생태학도 종합과학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생태학을 생물학에서 분리하여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