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1.07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대헌장 기념관 ‘물에 쓰다’, 2018년.
2018년 6월 16일 런던 남부의 템스 강변 러니미드 초원에서 '대헌장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원래 이름이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인 대헌장은
1215년 6월 15일 실정의 책임을 추궁당하던 존 왕이 귀족들의 강요로 절대 권력을
제한하는 63개 조항을 지키기로 서명한 문서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대헌장 서명 800주년에 즈음하여 건축가 마크 월링거
(Mark Wallinger)와 런던의 스튜디오 옥토피(Studio Octopi)에
독창적인 기념관 건립을 의뢰했다.
월링거는 매년 50세 미만의 영국 예술가에게 시상하는 터너상을 2007년 받았다.
그는 25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존 키츠의 묘비명을 활용하여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대헌장의 가치를 재현키로 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노라"라는 묘비명은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돌에 새긴 법(法)은 지워질 수 있어도, 물에 쓴 이름은 영원하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흙 다짐 공법으로 지은 소박한 원통형 건물은 안쪽이 낮은 이중벽으로 둘러싸인 미로 같은 구조이다.
대헌장 39절을 돌아가며 거꾸로 새긴 스테인리스 판재로 천장이 뚫린 중정(中庭)에 있는 연못의 둘레를 마감했다.
천장 빛을 받은 글자들은 잔잔한 연못물 위에 또렷이 반사되어 쉽게 읽힌다.
"자유민은 동등한 신분을 가진 자에 의한 합법적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감금·추방·재산의 몰수 또는
어떠한 고통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고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던 존 왕의 약속은 그의 아들인 헨리 3세에 의해 1225년 반포되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해마다 정해만 놓고 번번이 지키지 못하는 새해의 다짐을 물에 비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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