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12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공자는 학식과 덕이 깊은 관료가 왕을 보좌해서 백성을 보살피며 염치와 예로 인도하는
이상 사회를 꿈꿨다. 그런데 유교의 덕치 구현을 표방했던 조선의 문신들은 학문을
출세의 도구로 삼아서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했고 마침내는 매관매직을 서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그를 아끼던 정조의 승하 후 억울한 유배를 가게 되자 자기 신세의 비참함보다도
아들들이 실의에 빠질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폐족(廢族)이 되어 과거도 볼 수 없게 된 아들들에게 "폐족에서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과거에
급제해서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기 때문"이라면서
오로지 학문 자체를 목표로 정진해서 진정한 학자가 되라고 간곡히 타이른다.
자신이 젊었을 때 관직의 유혹에 이끌려 과거를 위한 학문을 했음을 후회한다면서.
우리나라는 근대화와 함께 정승 판서가 되는 것 말고도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길이 많이 열렸다.
그런데 아직도 고위 공직이 인생 최고의 성공이라는 관념이 막강한 모양이다. 그래서 공직 한 자리 차지하려고
유력 후보를 기를 쓰고 돕고, 후보는 정권을 잡으면 참모들에게 관직을 나눠주어 보은한다.
예전 정권들은 가급적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서 등용하려 노력했고 '사은' 인사는 국민의 눈치를 보면서 가끔 끼워 넣었는데
이 정부는 '전문성' '실력' '경륜' 따위는 잠꼬대라는 듯 자기 패거리들만 등용한다.
정권 교체와 함께 으레 교체되는 자리와 임기 만료된 자리만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임명직도, 커리어 관료도 마음에 안 들면 약점을 억지로 캐내고 압박해서 밀어내고
자기네 사람을 심는다. 이렇게 해서 무자격자, 부적격자가 대거 요직에 심어졌다.
아마추어가 빚어내는 국정 차질과 국민 생활 피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그 행태가 마치 정복지를 5년간 마음껏 약탈하고 농락할 허가를 받은 칭기즈칸의 군대 같다.
그런데 5년으로는 부족하니 100년을 해야겠다는 말도 나오는가보다.
학교 교사가 꿈이었다는 것이 유일한 '자격'인 유은혜 교육부 장관을 필두로 구청의 말단 직원까지
전부 코드 인사가 심어졌다는 말도 들린다. 대한민국의 시계는 '빨리 되감기'로 세도정치 시대로 회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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