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州房/山行소식(나야)

울산 대왕암 둘레길

바람아님 2013. 12. 12. 16:45
10일 울산의 대왕암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방어진항에서 슬도를 거쳐 대왕암을 보고 해안을 돌아 공원 주차장까지 걸었습니다.

 

 

  

밝은 햇빛을 안고 슬도 등대섬으로 건너갑니다.

 

 

 

 

슬도에서 본 대왕암쪽

 

 

 

 

 

 

 

 

슬도를 나와 대왕암 쪽으로

군데 군데 바다낚시를 하는 태공들이 있네요.

해안가에는 송림이 늘어서 있습니다.

 

드디어 대왕암 도착

 

 

 

 

 

 

 

 

대왕암에서 본 대왕암 공원쪽

 

 

 

 

 

이제 공원쪽으로

 

공원엔 들고양이가 많으네요.

 

 

 

 

 

 

 

 

 

 

대왕암구경 잘하고 갑니다.

참고로 문무왕릉에 대한 자료입니다.

 

문 무 왕 릉 에 대 하 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 30대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으며, 불력(佛力)으로 동해의 왜구를 막으려 하였다. 또한 신문왕(神文王)은 부왕의 뜻을 이어 동해변에 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고 동해를 향해 구멍을 뚫어 조수가 금당 밑까지 들어오게 하여, 용이 된 문무왕이 조수를 따라 드나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또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북쪽 언덕 위에는 이견대지(利見臺址)가 있는데, 신문왕은 이곳에서 대왕암을 망배(望拜)하였다고 한다. 현제는 사적 158호 문무대왕릉으로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울산의 대왕암은 안내문에 의하면 문무대왕비가 한 마리의 호국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으며 그 바위를 대왕바위 혹은 댕바위라고 한다는 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문무왕은 경주에서 수중장례를 치렀는데 왕비는 울산까지 와서 호국룡이 되었다는 설은 무언가 의문이 든다. 마침 대왕암 안내문을 보고 있으니 이곳 문화해설사가 와서  대왕암이 어느 것인지 물어 보니 다리 건너쪽 바위라고 일러 주었다. 그분은 대왕암 유래를 안내문의 내용과 다른 관점에서 설명해 주었다.“문무대왕의 증손자인 34대 효성왕이 할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곳에 뭍히지 않았나하고 추측한다.”고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효성왕은 유명으로 법류사 남쪽에서 시체를 태워 뼈를 동해에 뿌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효성왕은 재위 5년 동안 외척의 권세에 눌려 왕권이 강화되지 못 하였으므로 울산까지 와서 뿌려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옛날에는 임금님이 나들이 한곳은 그에 따른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경주에서 울산까지는 멀지 않는 곳이며 바다경치가 수려하여 신라왕들이 나들이를 하여 그 곳이 '대왕암' 혹은 '댕바위'란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나 나름대로 유추해 봅니다.    - 퍼 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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