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8.15 안용현 논설위원)
1989년 6월 주중(駐中) 미국 대사였던 릴리는 자서전에 "천안문(天安門) 광장 인근으로 중국군이 처음 접근할 때만 해도
시위대가 군대를 가로막고 야단을 쳤다"고 적었다.
그러나 돌진하던 장갑차 한 대가 성난 군중에 막혀 불타고 탈출한 병사가 얻어맞아 죽는 일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인이 중국인을 죽이면 안 된다"는 시위대의 외침을 뚫고 기관총탄이 무차별로 날아들었다.
▶그때 베이징에 거주하는 미국인이 1400명이나 됐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중국 지도부가 계엄군에게 "외국인은 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태 당시 미 대사관 무관은 '젊은 중국군 장교'로부터 "당신이 사는 아파트 2층 이상은 절대 올라가면 안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대사관은 곧바로 천안문 근처에 살던 미국인들을 대피시켰다.
그 뒤 외교단지 아파트에 총탄이 쏟아졌다. "문을 닫고 개를 때린다(關門打狗)", 중국에 간섭 말라는 경고였다.
▶2014년 홍콩 시위대가 10만명 넘게 불어나도록 중국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대 규모가 줄자 '파란 리본'을 단 친중(親中)단체를 앞세워 비폭력을 강조하던 시위대를 공격했다.
그러고는 "시위대가 법치를 짓밟는다" "서방이 배후"라고 선전했다.
시위대가 수세에 몰리자 곧바로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했다.
적이 공격하면 물러나고(敵進我退),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敵疲我打)는 마오쩌둥 전술이었다.
▶이번 홍콩 사태에서도 한때 200만명에 이르던 시위대가 주춤하자 '흰색 셔츠'를 입은 친중 폭력단이 난데없이 등장해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홍콩 공항까지 마비되자 중국은 또 '서방 개입설'을 퍼뜨리며 "테러리즘의 징후"라고 했다.
다른 점은 미국의 태도다. 5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방미한 왕이 외교부장을 직접 만나 "홍콩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케리 국무장관은 "강경 진압을 자제하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홍콩 시위를 '폭동'이라고 부르며 "홍콩과 중국 간의 일"이라고 외면했다.
▶중국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가 13일 갑자기 뉴욕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홍콩 해법'에 관해 미국 측의 양해를 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그날 트위터에 "중국군이 홍콩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썼다.
지금 홍콩을 보면 '천안문'이 떠오른다.
750만 홍콩인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지금의 자유라도 지키면서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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