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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52] 광둥과 홍콩의 人文

바람아님 2019. 8. 23. 16:19

(조선일보 2019.08.23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우링(五嶺)이라는 험준한 산지(山地)를 남쪽으로 넘으면 중국의 끝자락 광둥(廣東)이다.

다른 말로는 영남(嶺南)이라고 적는다.

이 지역 인문(人文)이 지니는 특색의 키워드는 일탈과 자유, 그리고 변혁이다.

중국 당국이 개혁·개방을 펼치면서 가장 주목받던 곳도 광둥이다.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쳐 내놓은 중앙정부의 '정책(政策)'은 늘 이곳 '대책(對策)'의 맞바람에 흔들렸다.

"위에서 정책을 내놓으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마련한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이 가장 유행했던 곳이 광둥이다.

정부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제 편의대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만큼 광둥은 '중앙'에서 거리상으로 멀고,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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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는 인물도 많았다.

우선 중국 3000년 왕조 역사를 뒤엎은 신해혁명(辛亥革命)의 주역 쑨원(孫文)이 이곳 출신이다.

장구했던 왕조의 명맥을 단숨에 끊어버린 혁명의 풍운아다.

청(淸)나라 말기 대규모 전쟁의 피바람을 일으킨 민란,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의 시발점도 광둥이다.

홍수전(洪秀全) 등 태평천국 운동 지도부 인물 대부분은 광둥에서 태어났거나 자랐다.

1898년에 청나라가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개혁은 보통 '변법유신(變法維新)'으로 부른다.

입헌군주(立憲君主) 제도 등을 도입하고자 했던 막바지 혁신의 몸부림이었다.

이를 주도했던 강유위(康有爲)와 양계초(梁啓超)도 모두 광둥이 고향이다.


요즘 중국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홍콩은 광둥 지역의 이런 인문을 물려받아 더 발전시킨 곳이다.

오랜 영국 식민지 생활을 거치며 체득한 자유와 법치의 틀도 있어 중국과 갈등은 깊어져만 간다.

중앙이 내놓은 '정책'에 '대책'을 펼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그를 거부하는 수준이다.

홍콩 사태가 더 오래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