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9.09.16. 04:08
미국 재무부가 북한의 3개 해킹그룹에 대해 제재를 단행했고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미국에 돌아온 뒤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저녁식사를 했다. 미국이 북·미 협상을 앞두고 물밑대화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경질로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행보에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13일(현지시간) “북한의 3개 악성 사이버그룹인 ‘라자루스그룹’과 ‘블루노로프’ ‘안다리엘’을 제재한다”면서 “이들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대상이자 북한의 중요 정보당국인 정찰총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라자루스그룹이 2007년 초 북한 정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정찰총국의 제3국(제3 기술정찰국) 110연구소(110 리서치센터)에 소속돼 있다고 설명했다. 라자루스그룹은 북한 해킹그룹의 몸통으로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 사건에 관여됐다고 미 재무부는 지적했다. 당시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해킹 공격을 당해 영국의 일반 의료행위의 약 8%가 마비됐다. 2014년 미국 기업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 사건의 주범으로도 지목받았다.
블루노로프와 안다리엘은 라자루스그룹의 하부 해킹그룹으로 알려졌다. 미 재무부는 블루노로프가 외국 금융기관에서 11억 달러(약 1조3000억원)가 넘는 금액의 탈취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안다리엘은 한국 정부와 인프라를 해킹 표적으로 삼았는데 2016년 한민구 국방장관 재임 시절 장관 집무실의 개인 컴퓨터와 국방부 인트라넷에 대한 해킹이 이들의 소행이다.
미 재무부는 3개 해킹그룹이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9월 사이에 5개 가상화폐거래소를 해킹해 5억7100만 달러(약 6800억원)의 가상화폐를 탈취했으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이번 제재는 대화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 정부는 북한 해킹그룹 제재가 북·미 대화의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제재에 대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제재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따른 피해 내역을 자체 집계로 제시하는 대신 ‘업계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통해 추산하는 형식을 취했다.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고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이번 저녁식사가 대북 강경파였던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경질 이후 북한에 강하게 대화를 손짓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탠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 자리에는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 대사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턴 전 보좌관의 후임으로도 거론되는 그리넬 대사는 지난 8월 독일을 방문했던 웜비어 부모와 만난 적이 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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