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2019.10.11. 03:15
"중국이 해양 유전 개발을 위해 남중국해 전역에 대한 주권을 선포한다. 이에 반발한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해상 교전이 벌어진다. 베트남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미국은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추가 투입한다. 중국은 이를 도발로 규정하고 오키나와 등 미군기지에 공습을 가한다. 유엔의 중재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동아시아는 전화에 휩싸인다.
일본은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평화헌법상 '집단적 자위권'이 없는 일본은 군사적으로 미국을 도울 수가 없다. 미일 안보조약상 그럴 의무도 없다. 문제는 일본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중동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수송로인 남중국해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부족에 따른 국가마비 사태를 막기 위해 일본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중립을 선언한다.
핵심 보급기지인 일본의 도움을 받지 못한 미국 태평양 함대는 중국의 잠수함과 전폭기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이즈음 중국 인민해방군은 하노이로 진격해 베트남 북부를 손에 넣는다. 미국 내에선 반전 여론이 득세하며 태평양을 중국과 양분하는 선에서 휴전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 행정부는 서태평양으로의 추가 병력 투입에 부담을 느끼고 전세는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유작 '문명의 충돌'에서 제시한 미중 전쟁 시나리오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시나리오의 현실성이 아니다. 석학의 역저에서 묻어나는 미국의 불안감이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배신, 그에 따른 서태평양 제해권 상실이다. 이는 곧 중국으로의 헤게모니 이전을 뜻한다. 헌팅턴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신흥 패권국에 대해 견제보다는 편승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일본이다. 영국, 독일, 미국 순으로 과거 새로운 강대국이 출현할 때마다 일본은 그들과 손을 잡아왔다.
이미 구매력 기준 GDP(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을 추월한 중국이 만약 경제력에서 미국을 압도하고 군사적으로도 버금가는 수준까지 올라선다면? 그때도 일본은 여전히 미국의 확고부동한 동맹으로 남아있을까.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간 찾아올 미래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무역전쟁은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일본 자위대의 항공모함급 호위함 '카가'에 오른 건 아베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를 지지한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미국만 일방적으로 일본을 돕는 현행 안보조약을 상호방위조약으로 바꾸기 위한 포석이다. 그 전까지 미국은 어떻게든 일본이 중국 쪽으로 기우는 걸 막으려 한다. 미국이 미일동맹을 그토록 중시하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 중 양자택일해야 할 때 미국의 선택은 명약관화하다. 미국에게 보급기지인 주일미군은 필수지만, 전진기지인 주한미군은 선택이다. '혈맹' 쿠르드족까지 내팽개친 미국이다.
미국에게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는 한일간 문제가 아닌 미군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하지만, 미 국방부는 끊임없이 지소미아 연장을 공개 촉구하고 있다.
지난 2일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먼저 정보 공유를 요청한 건 일본이 아닌 우리였다. 일본의 정보가 없었다면 탄착점과 사정거리를 알아내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대일 압박 카드 중 하나인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동맹과 미사일 탐지능력을 희생할 정도로 소중할까. 정말 이것 말곤 일본을 움직일 방법이 없을까. 22일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양국 총리의 외교적 타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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