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동서남북] 쓰러지는 대형 마트를 때리는 진짜 이유

바람아님 2019. 9. 26. 18:00

(조선일보 2019.09.26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온라인 쇼핑, 인건비 상승으로 대형 마트 생존 불투명한데
규제 더 늘려 옥죄는 정부…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것


이인열 산업1부 차장이인열 산업1부 차장


"격한 경쟁 속에서 매출 감소와 가파른 비용 상승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시점에

서 있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얼마 전 임일순 홈플러스 사장이 전 직원에게 보낸 친필 편지의 일부다.

편지엔 백화점과 대형 마트 등 유통업계가 처한 절박함이 담겨 있다.

요즘 '조국 세상'에 함몰돼 있지만 사상 초유의 위기에 빠진 유통업계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롯데마트 포항두호점. 4년 6개월 전에 건물이 완공됐지만 여전히 문을 열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

인근 20여곳의 전통시장과는 합의를 마쳤지만 단 한 곳의 전통시장이 반대하면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투자한 땅값과 건축비만 1080억원, 여기에 임대료 손실과 유지 비용이 연간 40억원이 넘는다.


#'안양점, 인천점, 부평점, 팩토리아울렛 인천점, 대구영플라자점, 엘큐브 홍대점, 엘큐브 이대점, 엘큐브 광복점'

올해 폐점한 롯데백화점의 점포 명단이다.  출점은 막히고 기존 점포는 문을 닫고 있으니 위기는 당연하다.

이 회사 지난해 영업이익은 7년 만에 반 토막이 났고, 롯데마트는 아예 16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2분기에 창사 이래 첫 분기 적자까지 기록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백화점과 마트를 겨냥해 정치권이 국회에 내놓은 유통 규제 법안은 39개다.

'월 2회 의무휴업 대상을 복합쇼핑몰로 확대하자'는 내용 등이다.

일부 야당 반대로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자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국토부 훈령을 바꿔 규제를 하려는

꼼수까지 시도하고 있다.


정부도 가세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12월 말부터 신규 마트가 들어설 때 인근

'소매점'만 아니라 '모든 업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제출하도록 했다.

업계는 "누가 피해를 볼지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할 판국"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원회도 유통업 종사자의 휴식권 등을 내세워 의무 휴업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39개'는 유통법 틀 안에서의 규제이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상생법'을 꺼내 유통업 출점을 제한한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전통시장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 조사에서 2012년 대형 마트 의무 휴업 이후 대형 마트와 전통시장 매출이 모두 감소했다.

이런 규제라도 없었다면 전통시장의 타격이 더 컸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양쪽 매출이 모두 쪼그라들고 있다면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얘기다.

7년 전 대형 마트 영업 규제가 처음 시작될 때와 지금은 유통 환경이 상전벽해다.

모바일 쇼핑과 쿠팡 같은 e커머스의 급성장에다 최저임금 등 인건비용 상승은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7년 전 레퍼토리'에 빠져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전방위적 유통 규제가 결국 소상공인을 옥죄고 그들의 '일자리'마저 줄인다는 데 있다.

복합 쇼핑몰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운영 매장이 70%가 넘는다. 규제의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될지 뻔하다.

이런 규제를 시행해도 통상 마찰 우려 때문에 코스트코, 이케아 등 외국계 유통 기업은 예외다.

글로벌 기준에는 안 맞는다는 방증이다.

미국, 일본, 영국, 심지어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유통 규제를 완화 혹은 폐지하는 추세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만 유통 규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뭘까.

서민 경제 파탄의 진짜 원인을 찾기보다는 '딴 곳'을 때리며 정서 달래기에 매달리는 포퓰리즘은 아닐까.

가짜 약은 결코 병을 고칠 수 없다. 본질을 외면한 처방은 결국 몸(경제)을 망가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