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10.01. 00:24
미 정계 내 미군 철수 지지 확산
핵무장 등 특단 대책도 고민할 때
그의 주장도 아주 황당한 건 아니다. 린제이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문재인 대통령, 그에게 냉소적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까지, 여러 인사가 “북핵 문제를 제대로 푼다면 트럼프에게 노벨상 자격이 있다”고 밝혀왔다. 이러니 자아도취 중증인 트럼프가 노벨상을 꿈꾸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작 문제는 그의 노벨상 욕심이 우리의 운명을 잘못된 쪽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추가 도발이 없고, 북한으로부터 불완전한 비핵화 조치라도 끌어내면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믿는 듯하다. 이런 인식이 현실화되면 완전한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트럼프는 올 노벨상을 놓치더라도 내년을 노릴 거다.
게다가 미 대선이 내년이라 그는 북핵과 관련된 가시적 성과에 목말라 있다. 주한미군 철수를 누누이 주장해온 트럼프인 지라 북한이 그럴듯한 양보만 해준다면 한반도에서 미군을 빼고도 남는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은 한·미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불거져온 해묵은 이슈이긴 하다. 그럼에도 최근 흘러나오는 철수론은 그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철수 가능성을 예측하는 주인공들이 범상치 않은 워싱턴 핵심 인사인 까닭이다.
실제로 최근 방한한 미 언론계의 전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은 지난 25일 “트럼프가 미군 철수를 충동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워터게이트를 특종보도한 우드워드는 워싱턴 속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공포:백악관의 트럼프』에서 트럼프가 ‘돈이 많이 든다’며 주한미군을 빼려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만류로 그만뒀다는 비화를 폭로했었다.
또 다른 워싱턴 마당발인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경고는 더 심상치 않다. 특강 차 서울에 온 그는 “미 의회 및 외교가에서의 철수 요구가 최근 몇 년간 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은 이제 충분히 강한 나라이니 미국이 지켜줄 필요가 없다”는 시각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얘기다.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다 결국 좌절했다. 의회·군부·정보기관, 그리고 백악관 참모 등 미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는 파워그룹 모두가 반대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미 의회와 군부가 돌아서고 있다. 백악관과 행정부 내에서 철수를 말릴 인물은 씨가 말랐다. CIA 등 정보기관에는 트럼프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올리는 측근만 득실거린다.
철수 쪽으로 워싱턴 분위기가 기울면 남는 변수는 한국이다. 문 대통령은 공식적으론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다. 그는 지난해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해 이 문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돼도 이를 고집할까. 지지 기반인 진보세력의 다수가 미군 주둔을 반대하는데도 말이다.
많은 이들은 미 의회가 ‘국방수권법’을 이용,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능하도록 대못을 박은 걸로 믿고 있다. 큰 착각이다. 주한미군 규모를 2만8500명 밑으로 줄이려 할 경우 이전 예산이 못 나가도록 법제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법 효력이 1년뿐인 데다 예외 조항까지 달려있다. 미 국익에 부합하고, 한국이 원한다면 의회 동의하에 뺄 수 있다.
결국 불완전한 비핵화에도 노벨상에 눈먼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단행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군 전술핵 재도입이든, 독자적 핵무장이든, 우리도 특단의 대책을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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