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인문의 향연 - 지금 그대로의 당신에게 경의를

바람아님 2014. 1. 13. 09:17

(출처-조선일보 2014.01.13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사진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일부를 담는다. 사진으로 현실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순 없다고 하더라도 사진에 찍힌 현실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다. 사진이 보여주는 현실이 직접적일수록 그 사진의 가치는 현실의 이면에 가린 내적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생겨난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을 보여주고 실재를 창의적으로 탐구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1876~1964)1910년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대한 원형적 초상을 집대성하겠다는 생각으로 장대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돌입하였다. 
그는 개인의 초상을 통해서 거대한 사회 구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20세기의 인간상(像)'을 사진에 담았다. 농부로부터 시작해서 기술자·변호사·국회의원·군인·은행가·학자·예술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과 계층을 체계적으로 촬영한 인물 전도에 포함된 사진은 그야말로 방대했으며, 초상 사진 위주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잔더의 야심 찬 계획의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얼굴(Antlitz der Zeit)'이 출간된 후 나치 정권은 그의 활동이 아리안 우월주의에 위배된다는 생각으로 그를 불온 사상가로 지목하고 원판을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사람은 바뀌어도 사진은 남는다. 나치는 사라졌고 지금 우리는 잔더의 사진을 보고 있다.

아우구스트 잔더, 제빵사 작품 사진
아우구스트 잔더, 제빵사, 1928.

그의 인물 사진은 1928년에 촬영된 이 제빵사처럼 어떠한 꾸밈도 없이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둥근 얼굴에 흰 가운을 입은 퉁퉁한 몸집, 반죽을 만드는 주걱과 그릇을 잡은 손, 흰 가루가 덮인 작업 공간은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과 반듯하게 버티고 선 두 다리 아래에서 검게 반짝이는 구두는 그가 비록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누구보다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회인임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진중하고 반듯하게 바라보는 방법만으로도 유능함과 자존감이 어우러진 자긍심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순수한 사진이 지금도 우리 눈을 사로잡는 이유는 잔더가 꿈꾸었던 사회적 가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사진은 당대의 정치와 권력의 그림자를 벗어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다큐멘터리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한 세기 전 평범한 제빵사 모습에서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떠나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하는 사람들이 곧 시대와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철학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적 시각에 내재한 인간관은 존중과 자긍의 미덕을 일깨워 준다. 나와 남을 존중하고 긍정하는 태도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신념을 실천하게 하는 힘을 만든다. 우리 모두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고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기본 소양이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인 것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잔더의 눈을 빌려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필요한 자리를 지키는 모든 이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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