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예술계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을 꼽으라면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Stieglitz·1864~1946)와 화가 조지아 오키프(O'Keeffe·1887~1986)를 빼놓을 수 없을 거다. 20년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연인이며 배우자, 예술적 동반자로서 특별한 사랑을 이어갔다. 스티글리츠가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2만5000통에 이르는 편지가 그들이 30년간 이어온 사랑의 역사로 남았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스티글리츠는 뉴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진작가이며 기획자였고 오키프는 그의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행운을 얻은 텍사스 출신 무명 화가였다. 오키프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인간적 매력에 사로잡힌 스티글리츠는 그녀를 여성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당신 손을 찍고 싶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던 스티글리츠의 카메라 앞에서 오키프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그의 지시에 따라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선 이제 막 화가로서 이름을 가지기 시작한 오키프의 자기애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려 했던 스티글리츠의 욕망이 교차한다. 또한 기묘하게 얽힌 그녀의 손은 안락한 사랑의 둥지를 꿈꾸던 오키프의 철없는 기대와,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없었던 이기적 예술가인 스티글리츠의 자의식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으로 잉태된 것이었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5년 만에 오키프는 홀로 뉴욕을 떠나 뉴멕시코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꽃피울 만한 작품 소재와 색을 찾아냈고, 수많은 동료와 후원자를 만났으며, 다시는 스티글리츠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것이 사랑과 예술과 결혼을 공존시키기 위한 그녀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