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신수진의 사진 읽기 [15] 연출된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대중

바람아님 2013. 11. 15. 09:04

(출처-조선일보 2013.11.13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


사진의 예술성은 기록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형성되어왔다. 사진의 사실성, 즉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능력은 모두를 감탄시킬 만한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사진 발명 초기에 사진술을 자신의 예술적 표현 도구로 삼았던 작가들은 사진을 이용해서 기록 이상의 상상력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야기가 담긴 사진'에 대한 관심은 사진의 새로운 예술성을 시험하기에 적합한 과제였다. 작가들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진 속 장면들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헨리 피치 로빈슨, 임종, 1858.


헨리 피치 로빈슨(Henry Peach Robinson·1830~1901)이 1858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앞둔 소녀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눈을 감은 아이와 허무한 눈빛으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 그리고 절망으로 무거워진 등을 보이며 돌아선 아버지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 작가는 5장의 원화를 조합해 마치 그림을 그려 넣듯이 각각의 인물과 배경들을 치밀하게 구성했다. "사진가는 현실과 인공을 혼합하기 위한 모든 기교를 동원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 준엄한 의무를 지녔다"고 주장한 그의 신념이 낳은 결과였다.

감상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완벽하게 연출된 사진에서 슬픔을 공감하기도 했지만, 실제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장면을 꾸며내서 찍는 것은 사진의 기록성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이들은 회화에서는 가능하지만 사진에는 부적합한 주제라는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회화와 사진,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연출된 장면으로 기록과 상상의 예술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보다 꾸며진 장면에 눈물 흘리는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