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29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김기철의 시대탐문] [6] 사회학자 이재열 서울대 교수
해외선 산업·민주화로 한국 칭송, 내부엔 불신·불만·불안 가득
권력층이 앞장서 기성 제도 공격… 현대사 부정하는 교육도 한몫
폐허서 일군 성공 역사 일깨워야
연초 TV 토론을 보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용지식인'을 자처한 친여(親與) 인사가 조국 수사를 겨냥, "사법부가 썩었다.
검찰도 썩었고"란 말을 아무렇잖게 내뱉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박근혜 정부 비리를 파헤칠 때는 박수 치며 환영하던 그였다.
칼끝이 자기편을 향하자 사법제도 자체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얼마 전엔 청와대 참모까지 나서 "수사 결과가 허접하고 비열하다"며 검찰을 몰아세웠다.
사회학자 이재열(59) 서울대 교수가 떠올랐다.
이 교수는 지난해 한국 사회를 불신, 불만, 불안의 '3불 사회'로 진단한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21세기북스)를 펴냈다. 한국은 나라 밖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기적의 나라로 칭송받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불신, 불만,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규칙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높다고 했다.
―예전엔 권력 바깥 세력이 검찰, 기업, 언론을 비판했는데 지금은 집권 세력이 기존 제도를 공격한다.
"서구 민주주의는 '불신(不信)의 제도화'를 거쳤다. 위정자가 누가 되든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삼권분립이든, 임기제든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게 민주주의 요체다.
이 정부 사람들은 '조국은 문제가 없다'며 도리어 검찰을 공격한다.
정권 핵심의 586 세력은 검찰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도를 공격하는 데만 신경 쓸 뿐 권위가 무너졌을 때 겪을 국민 피해는 아랑곳없다.
"권력이나 재산에 따라 규칙이 휘어지지 않는 게 예측 가능성이다. 이게 훼손되면 공정성을 지킬 수 없다.
특정 집단이나 다수의 이름으로 규칙을 바꾸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
권력 잡았다고 사법제도를 멋대로 바꾸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 제도가 또 바뀔 것 아닌가."
이재열 교수는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찾지 않고 민족 자존심만 내세우는 역사 교육이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느끼게 한다”고 경고했다. /김지호 기자
―한국 사회에 불신이 만연한 이유는 압축 성장 때문인가.
"민주화의 딜레마랄까. 중국, 베트남은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고, 우리도 1980년대까지 그랬다.
권위주의를 깨면서 권위도 추락했다.
서구는 국민이 합의한 절차에 따라 지도자가 뽑히면 국민이 팔로어 역할을 충실히 한다.
시스템과 제도에 대한 권위가 살아 있다.
우린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유교 유산의 영향이 강하다."
―낡은 유산을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1980년대 학생·노동운동에서 지도자의 권위주의가 얼마나 강했나.
권위주의를 깬다고 했지만 그들 역시 대단히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운영됐다.
권위주의를 깬 뒤엔 사회 운영에 필요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욕하고 침 뱉는 건 쉬운데 새로운 권위를 만드는 건 하루아침에 안 된다."
―기성 제도에 대한 공격과 부정을 부추기는 정치인과 '진보' 지식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586 권력 집단은 지나친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있다.
시대는 변했는데 민주화운동 시절 도덕적으로 정당했다는 기억만 있지 성찰이 없다.
'나 해봤거든' 이런 식이니 '진보 꼰대' 소릴 듣는다.
기성 제도를 공격해 불신을 키우면 국가의 품격만 망가뜨릴 뿐이다."
―한국 사회가 신뢰의 적자 때문에 치르는 비용이 막대하다.
그 뿌리엔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처럼 가르치는 사관(史觀)도 한몫한다.
"입시 면접을 해보면 학생들이 현대사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 교육을 받았다는 걸 느낀다.
우린 세계사적으로 성공한 모델인데 피해자 의식만 강하다. 과도한 민족주의 탓에 실패만 부각시킨다.
같은 시기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과 비교해보고 객관적으로 봐야지 실패만 부각해선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기 어렵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출발점인데 그때 모든 걸
다 이뤘어야 한다는 이상론이 강한 것 같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는
세계 불평등의 기원을 '제도'에서 찾으면서 남북한을 비교했다.
분단 이전의 북은 남보다 공장과 발전소 등 가진 게 많았다.
개인의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착취적인 북쪽 제도와
개방적이고 개인·기업의 성과와 기여를 인정하는 남쪽 제도가
70년간 지속된 결과 지금의 격차가 생겼다는 것이다.
해방과 전쟁을 거친 한국 사회는 모두가 가난하지만 평등한
사회였다. 폐허에서 출발해 이 정도 산업화, 민주화를 이뤘으면
성공의 역사다."
[품격 있는 사회 만들려면]
이재열 교수는 사회의 품격을 끌어올리려면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짓 메시아 같은 정치인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우물을 파는
리더십을 가려야 한다"고 했다.
시민 개인의 입장에선 신뢰의 반경을 넓혀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 복지국가는 조세저항이 적다. 모든 사람이 내고 혜택도 골고루 받는다고 믿어서다.
우린 타인에 대한 신뢰가 OECD 최하위다.
여가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이 덜 배타적이고 연대감이 강하다고 한다.
음악회나 스포츠 같은 여가 활동이나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연대를 높여 가야 한다."
불로그내 같이 읽을 거리 : [김기철의 시대탐문] [6] 사회학자 이재열 서울대 교수 |
[기고] 산업혁명 종주국 영국이 '멘털 캐피털(Mental Capital ·정신적 자본)'에 꽂힌 이유 |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공원과 스타벅스의 차이 |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비결 (조선일보 2018.10.25) |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9] 체임버 매직 |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1] 벤치의 매직 |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특권이 불러온 교육 불평등 (조선일보 2019.09.07 우석훈 경제학자)
하지만 로버트 D. 퍼트넘 하버드 대학교(케네디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런 작은 방식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미국인들이 서로서로 다시 사회적 연계를 맺어야(38p), |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중권 "문재인 정권 사람들, 잘못하고도 적반하장으로 대드는 게 공통점" (0) | 2020.01.31 |
---|---|
진중권, 檢 비판한 임종석에 “조신하게 수사 받아라”/진중권 "내가 임종석이라면...檢소환 응하고 지지자 선동안해, 속이려 마라" (0) | 2020.01.30 |
진중권 "원종건, 정치권 인재영입쇼의 본질 보여줘"/진중권 "박지원, 민주당 가고 싶어 몸 달아…능청 연기 오스카상" (0) | 2020.01.29 |
[기고] 산업혁명 종주국 영국이 '멘털 캐피털'에 꽂힌 이유 (0) | 2020.01.28 |
진중권 "임종석, 정계은퇴가 쇼핑몰 주문취소? 국민 개·돼지로 아나" /유시민 "진중권 별 영향 없다" vs 진중권 "유시민 예측 맞은 적 없다" (0) | 2020.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