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지방의회 의원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市)에 세워진 '일본군위안부 소녀상(像)' 철거를 요구하러 갔다가 퇴짜 맞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상 건립 부지를 제공한 글렌데일 시의회는 일본 정치인들을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글렌데일 시의회는 작년 7월 소녀상이 세워질 때도 일본이 반발하자 "부끄러운 줄 알라"고 쏘아붙였다. 글렌데일은 한국 교민이 특별히 많이 사는 곳도 아니다. 미국의 하고많은 도시 중 왜 글렌데일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졌을까. 일본의 만행에 대한 그들의 단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천대 이성낙 명예총장이 며칠 전 글렌데일을 방문하고 인터넷에 올린 글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글렌데일은 미국에서 아르메니아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20만 주민 가운데 절반이 아르메니아인이다. 시의원 5명 중 4명이 소녀상 건립을 찬성했고 그중 2명이 아르메니아 출신이다.
▶터키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아르메니아는 1차 세계대전 때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제국으로부터 '종족 말살'에 버금가는 수난을 받았다. 오스만튀르크는 독일·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영국·프랑스·러시아와 싸웠다. 무슬림 국가 오스만튀르크에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들은 눈엣가시였다. 오스만튀르크는 아르메니아가 반란을 꾀한다는 구실로 아르메니아인을 100만명 이상 학살했다. 수많은 여성이 능욕을 당하고 죽었다. 어느 작가는 그때의 참상을 보고 '지구상의 모든 죽음이 거기 있었다'고 썼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살길을 찾아 전 세계에 흩어졌다. 그러나 터키는 대학살을 "아르메니아인을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라고 둘러댔다.
▶쓰라린 비극을 가슴에 안고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일본군위안부 같은 침략자 만행을 보는 심정은 남다를 것이다. 글렌데일시가 소녀상 옆에 세운 '평화 기념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끌려가 성 노예로 학대당한 20만 여성의 희생을 기린다. 인권을 짓밟는 모든 만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는 간절히 소망한다.'
▶흔히 '대학살' 하면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먼저 떠올린다. 아르메니아 학살은 잘 모른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소녀상과 '평화 기념비'를 통해 그들 뼛속 깊이 자리 잡은 분노를 다른 민족의 아픔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표현했고, 인류 보편의 인권에 대한 갈망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아픔과 분노의 국제적 연대(連帶)가 퍼져 간다면 일본의 뻔뻔한 역사 왜곡 같은 건 설 땅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