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일본 경찰들이 막 끌고가고.. 무서웠어요"

바람아님 2014. 2. 23. 09:21

지난 2월 8일, '2·8도쿄원정대'로 이름붙인 일군의 대학생들은 재일YMCA 건물 앞에서 95년 전의 독립선언을 재현했다. 최근 심상치 않게 속도를 내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바람 속에서 등장한 아베 총리의 위안부 관련 망언과 신사참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언론의 관심을 받은 것은 독립선언의 재현이 아니라 하루 전인 2월 7일,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일어난 경찰과 원정대 간의 충돌이었다. 엄청난 수의 우익이 집결한 가운데 양측의 충돌을 막으려는 일본 경찰 600여 명이 16명의 원정대를 강제 귀가 시키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관련기사 :옷 찢어진 도쿄원정대 "평화 말하고 싶었다"
). 일각에서는 이날의 충돌이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사건을 이슈화하는 '1980년대 감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 2.8독립선언 재현 퍼포먼스95년 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진행된 2.8독립선언을 재현하게 위해 일본을 방문한 2.8도쿄원정대가 일본 YMCA 건물 앞 '조선독립선언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8도쿄원정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원정대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연락이 왔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비판이라는 하소연이었다.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18일, 이제는 2014년 판 3·1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원정단원들을 신촌 겨레하나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정대 대장을 역임한 강혜진(25·아래 강)씨와 대학생 겨레하나 회원인 김연희(25·아래 김)씨다.

"도쿄에 간 것은 과거 때문이 아니라 현재 때문"



▲ 야스쿠니 신사에서 버스 하차를 막는 일본 경찰들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우익과의 충돌을 막으려는 일본 경찰들은 6백여 명이 집결하여 도쿄원정대의 하차를 막았다. 결국 경찰은 기념촬영을 허용했지만 현수막을 찾기 위해 무리한 몸수색을 벌여 충돌이 일었났다.


- 2월 7일 야스쿠니 신사 앞 충돌이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어요. 먼저 '2·8도쿄원정대'를 조직하게 된 이유부터 들려주세요.
: "도쿄원정대는 '겨레하나'(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에서 역사문제를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만든 모임이에요. 최근 일본과 관련된 과거사 문제가 많았잖아요? 아베 일본총리 측근의 망언도 그렇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따라다녔다'고 쓰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 문제도 그렇고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어요. 할머니들이 수요집회에서 그러세요. '내가 바로 증거인데, 왜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없었다고 하는 거냐?'라고요(아베 정권은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서 일본군이나 관헌에 의한 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직접적 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지난 20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 입장을 재확인했다-기자 말). 그래서 '우리가 직접 가서 일본 정부에 확실하게 말해 주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일이 커졌죠.(웃음)

그리고 저희가 일본에 가기 얼마 전에 황금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황금자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 지난 1월 26일 별세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오신 할머니는 한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않고 폐지를 주워 모은 1억 원을 강서구청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기자 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더 미룰 일이 아니었죠."




: "우리는 아직 일본과 관련된 문제를 과거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베 총리 망언도 그렇고 독도 문제도 그렇고요. 역사 공부를 하다보니까 이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더라고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과정들이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의 평화를 위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안 따라 나설 수가 없었죠.(웃음)"

- 일본에 가서 가장 하고 싶었던 활동은 뭐였나요?



: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야스쿠니 신사였어요. 예전부터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여론이 많았잖아요? 전범들을 신격화해서 참배한다고만 배웠지, 실제로 보지는 못했어요.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게 1순위였고요. WAM(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이라고 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모아놓은 기념관이 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하고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합쳐 놓은 격이죠. 이곳을 둘러보고 싶었어요. 재일코리안 문제를 다룬 '고려박물관'에 가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고요."




: "저 역시 현장을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진행 중인 문제를 직접 보고, 사람들에게 알려서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지금 일본의 행동들이 아시아의 평화를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말하기 위해서는 현장 먼저 봐야 하잖아요?"

- 일본의 어떤 행동들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있나요?




: "일본은 전범국가잖아요. 일본 평화헌법이라는 것이 과거처럼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도록 군대를 제한한 것인데, 지금 일본이라는 국가가 정말 과거에 저지른 전쟁을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아베 정권의 자민당 신년모임에서 평화헌법 9조(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에 공포한 것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영구히 포기하고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평화헌법으로도 불린다-기자 말)를 개정하자고 했다잖아요?

'적극적 평화'나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결국 동맹군이 위협을 받으면 일본이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에요. 우리는 북한과 미국 간에 항상 위기가 빈번하잖아요? 이렇게 되면 일본이 자의적으로 위협을 느낀다면서 공격할 수도 있다는 거죠. 끔찍한 일이죠."




: "영토분쟁을 봐도 그래요.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자신의 고유 영토라고 적는다고 결정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문제를 제소하고 있잖아요. 남의 나라 영토를 마음대로 뺏는 행태가 과거에 비해 더 심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야스쿠니 앞 충돌은 우발적... 그러나 억울하다"



▲ 2.8도쿄원정대원2.8도쿄원정대 대장을 역임한 대학생 강혜진씨(왼쪽)와 서울 대학생겨레하나 회원 김연희씨(오른쪽).


- 이제 2월 7일로 돌아가 봐요. 당시 원정대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면서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어요. 우익집단과의 충돌도 우려됐고, 결국 경찰과 충돌하면서 여러 비판도 나왔다. 어떻게 된 건가요?


: "저희가 계획했던 일정은 첫째 날 도착하자마자 내각부를 방문해서 아베 총리에게 질의서를 전달하는 것이었고요, 이후에 야스쿠니를 방문하는 것이었어요. 내각부에 갈 때부터 경찰이 계속 막았어요. '다 가지 말고 3명만 올라가라'고 하다가 약속이 안 되어 있으니 경비실에 맡겨놓으라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었죠.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에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우익단체들이 모여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두렵기는 했는데, 경찰이 그렇게 많이 있을지는 상상을 못했거든요. 한 600명 정도가 있더라고요."




: "사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많은 우익단체 회원들이나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적이 없어서 위협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경찰이 우익단체와 충돌할 수 있으니까 버스에서 아예 내리지 못하게 했어요. 그러더니 '일단 오긴 왔으니까 단체 사진이나 한 장 찍고 가라'면서 내리게 했어요. 그런데 '현수막은 안 된다'면서 몸수색을 하는 거예요. 저희가 거부하면서 난리가 났죠. 사지가 들린 채 끌려갔어요.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최소한 여경들이 끌고 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남자 경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끌고 가고... 너무 무서웠어요."

- 일각에서는 원정대가 의도적으로 충돌을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도 했어요. 고의적으로 이슈화를 노린 충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요.




: "그런 비판을 들으면 정말 억울해요. 일부러 충돌을 만들고 이슈화하려 했다고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어요.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했을 정도니까요. 어떤 분은 '80년대 운동권의 낡은 방법'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80년대 운동권이 아니거든요. 아무리 우익단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사람들이 형사처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실은 아니더라고요. '아, 일본이라는 곳이 참 상식적이지 않구나' 싶었어요."




: "애초에 우리 계획은 상황이 나쁘면 그냥 구경만 하고 오고, 괜찮으면 침묵 퍼포먼스를 하자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단지 우리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실 원정대에 대한 시민들의 응원을 보면서 우리가 대학생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내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절대 목숨까지 걸고 할 생각은 없었어요.(웃음)"



▲ 야스쿠니 신사에서 펼치려던 현수막도쿄원정대는 상황이 좋다는 전제 하에 작은 구호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으려고 계획했었다. '우리는 아시아의 평화를 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무리하게 현수막을 찾기 위해 몸수색을 펼치면서 대학생들과 충돌을 빚었다. 이 현수막은 오직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허용됐다.


- 애초에 준비한 침묵 퍼포먼스는 어떤 형식이었나요.




: "엄청 작은 현수막 들고 그냥 서 있는 거였죠. '우리는 아시아의 평화를 원합니다'라는 내용이에요(김연희씨가 보여준 현수막은 응원할 때 쓰는 세로 15cm, 가로 80cm 정도의 작은 구호 현수막이었다.- 기자 말). 평화를 원하는 건 어떤 집단만의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백악관이나 캐나다, 프랑스에서도 시위하는 걸 봤는데 경찰이 이렇게 1인 시위를 완전히 막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경제 강국이라는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일본의 현실을 제대로 느꼈어요."

-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었어요. 우르르 몰려가서 시위하는 방식보다 재특회 회장하고 끝장 토론 같은 것을 추진하라는 충고도 있었는데요...




: "우리가 일본사회에 던지려던 메시지는 사실 '반일'이 아니라 일본군국주의 부활로 인한 동아시아의 위협에 대한 것이었어요. 이것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아시아 차원의 문제잖아요. 모든 동아시아 국민이 나서야 하는 것이 아시아 평화 문제라고 생각해요. 방식보다 이런 운동의 내용을 이해해 줬다면, 그런 비판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 "맞아요. 언론에서도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만 보도했지 우리가 가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뤄주지 않더라고요. 현재의 문제에 대해 서로가 생각해보자고 했던 건데 방식 문제만 이야기하면서 비판해요. 사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2월 8일 독립선언 재현 퍼포먼스인데, 이것도 거의 보도가 안 되었고요."

"생각 다르다고 공격하는 건 우경화된 사회의 보편적 모습"

- 말한 것처럼 2·8 독립선언 재현이 가장 큰 계획이었는데 언론보도가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진행했나요?




: "95년 전에 독립선언을 낭독했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이 지금 재일YMCA 건물이에요. 이 건물 앞에 '2·8독립선언' 기념비가 있어요. 원래는 기념비 옆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는데, YMCA측에서 우익들의 타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지하강당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하더라고요. '사진 뜨면 바로 리스트에 오른다'고요. YMCA는 비교적 온건하고 보수적인 시민단체로도 볼 수 있는데도 이 정도죠. 기념비 옆에서는 아리랑을 불렀는데, 어차피 일본 우익은 알아듣지도 못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이마저도 경찰이 막더라고요."




: "95년 전 2월 8일에도 지하강당에 모여서 선언문을 읽었다고 들었어요. '아, 우리도 똑같구나, 95년이 지나고 해방이 됐는데도 바뀐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 울컥했어요. 우리가 확실하게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2·8 정신을 계승하자고 만세삼창을 했는데, 재일 코리안 분들과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함께 해서 뭉클했죠."

-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왔는데, 그만큼 성과는 있었나요? 느낀 점을 듣고 싶어요.




: "의도치 않은 두 가지 성과가 있었지요. 첫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청년들이 느꼈던 분노, 설움을 글로만 배워 왔는데, 막상 일본에 가서 뭘 하려고만 하면 경찰이 제지하니까 그 당시 나라 잃은 설움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역사를 잊고 살아서 이렇게 핍박받나 싶기도 하고.

또 하나는 돌아와서 느낀 건데, 처음에는 침묵 퍼포먼스조차 가로막고 생각이 다르다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모습이 일본 사회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게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경화된 사회가 가지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숙소(신주쿠)근처에서 아시아 평화를 위한 플래시 몹도 다 막더라고요. 현수막 펴고 사진 찍는 것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아, 우경화된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이거구나.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요."



: "전 좀 생뚱맞기는 한데, 2월 7일 야스쿠니 충돌 이후에 버스 기사 아저씨가 계약을 파기 하셨거든요. 우익 단체가 잡아먹을 듯이 나서니까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처음에는 '다 내려라, 계약 파기하자'고 하셨는데, 우리가 '숙소까지만이라도 태워 달라'고 통 사정을 했어요. 다음 날부터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너무 비싼 거예요. 공항철도가 2만 원에서 3만 원? 환승도 안 되고. '아, 민영화의 패악이 이거구나' 싶었어요. 철도 민영화, 절대 안 됩니다!(웃음)"

"3월 1일, 원정대는 서울 도심으로 갑니다"



▲ 도심원정대2.8도쿄원정대는 이제 3.1도심원정대로 바뀐다. 역사바로세우기와 동아시아평화를 위해 서울 곳곳에서 스톱모션을 준비 중이다.


도쿄원정대는 2월 7일 야스쿠니에서 일어난 충돌을 비판한 일부 보도에 대해 대단히 억울한 듯 성토했다. 원정대의 의도를 이해해주기보다 하나의 사건을 표면적으로만 보고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원정대에 참여한 회원들이 대부분 어린 학생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 매우 서운했을 것이다. 2시간 동안 때론 진지하게, 때론 깔깔 웃으며 자신들의 활약상(?)을 전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20대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이제 그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 "2·8독립선언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처럼 3월 1일 '도심원정대'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베 망언, 교과서 왜곡, 위안부 문제, 일본 재무장에 대한 '스탑모션 플래시몹'을 계획 중이죠. 사람들이 동시에 5분 정도 한 가지 행동을 하는 건데, 인사동이나 일본대사관 앞 등 여러 곳에서 진행할 계획이에요."




: "작년에 대학생들과 역사여행 안내서를 만든 적이 있어요. 전문가분들에게도 상당히 칭찬받은 책이랍니다.(웃음) 올해도 역사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칠 거예요. '도심원정대'를 비롯해서 '대학생 역사 알리미' 같은 것을 기획하고 있어요. 일본 우익을 보니까 상당히 젊더라고요. 그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들었는데, 우리 대학생들은 역사에 관심이 높아요. 3월 1일을 계기로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데 이제 대학생들이 나설 겁니다."

해방을 위한 토대를 만들었던 95년 전의 함성이 오늘 날에도 재현될 수 있을까?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면 카카오톡 'peaceuniv'나 페이스북 '대학생겨레하나'를 두드려라. 매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 집회에서도 역사를 걱정하는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