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4. 1. 27. 00:21
빈센트 반 고흐
영원의 문 앞에 선 화가
<동행하는 작품>
슬픔
울고 있는 노인
별이 빛나는 밤
"당신을…. 조, 좋아해요."
저질러버렸다. 끝내 말하고 말았다. 1873년 어느 날, 스무 살의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게 외제니 로예에게 고백했다. 곧 호감을 표할 생각이긴 했지만, 이처럼 뜬금없이 일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 로예는 고흐의 영국 하숙집 주인 딸이었다. 도도한 인상의 열아홉살 소녀였다. 고흐는 그런 성숙한 분위기의 로예에게 오래전부터 연심을 품었다. 사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 고흐가 일을 저지른 후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고흐는 이 정적이 차츰 두려워졌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빈센트. 미안해요." 귓가에 닿은 로예의 말이었다. 눈을 내리깐 그녀는 그에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아, 아니. 내가 더 미안해." 고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뒷걸음질쳤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는 도망치듯 물러났다. 고흐는 좁은 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는 로예가 하숙집의 다른 청년과 진작부터 눈이 맞았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둘이서 몰래 약혼까지 한 일 또한 한참 후에야 전해들었다. 그땐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8년 뒤, 고흐는 또 다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이번 상대는 사촌 코넬리아 키 보스스트릭커, 줄여서 케이였다. 그가 네덜란드 뇌넨에 있는 동안 함께 산 여인이었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고흐보다는 일곱살이 많은 과부였다. 고흐는 그녀에게 거침없이 다가갔다. 호감 상대를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케이는 그런 고흐가 귀찮았다. 동정심도 많고 배려심도 깊은 케이였지만, 그녀에게도 이 남자의 행동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싫어, 싫어. 절대로 안 돼!" 인내심을 내려놓은 케이는 대놓고 질색해버렸다. 이는 거절 이상의 절규였다. 케이는 이제 고흐가 무서웠다. 그녀는 고흐를 놔둔 채 암스테르담의 부모 집으로 재빨리 떠났다.
바 테이블 구석에서 누군가 버린 술을 홀짝이려는 여인, 클라시나 마리아 시엔 호르니크였다. 줄인 이름으로 시엔이었다.....시엔은 고흐보다 한 살 많은 몸 파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다섯 살 딸을 데리고 다녔고, 또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가난과 성병, 알코올 중독 등 상황도 썩 좋지 않았다. 고흐는 술집에서 처음 본 시엔을 자기 작업실로 데려왔다. 먹을 걸 주고, 잘 곳을 챙겨줬다.
https://v.daum.net/v/20240127002128754
“벌거벗은 이 여인은 왜 이토록 슬픈가”…그도, 그녀도 불행한 사람이었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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