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세상이야기

만물상 - 안산의 단원 김홍도

바람아님 2014. 4. 29. 09:12

(출처-조선일보 2014.04.29 조선일보)


경기도 안산시의 아파트 단지와 공원, 지하철 역에서는 눈에 익은 조선시대 풍속화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서당에서 야단맞고 우는 아이, 빨래터 여인들을 바위 뒤에서 훔쳐보는 선비, 단옷날 씨름판 엿장수…. 

천재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작품을 옮긴 것들이다. 

안산시는 해마다 김홍도를 기리는 단원미술제를 열고 있다. 작년에는 단원미술관도 문을 열었다.


▶김홍도와 안산의 관계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이 남긴 글에 나온다. 

표암은 "김홍도가 젖니를 갈 때부터 내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예닐곱 살 김홍도가 표암 집에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는 얘기다. 

당대 '예림(藝林)의 총수' 표암은 그때 한양에서 내려와 안산에서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 

장래 한국 미술사의 첫자리를 장식할 소년이 이빨 몇 개 빠진 앙징맞은 모습으로 그림 배우러 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만물상 일러스트


▶표암은 김홍도를 가리켜 "무소불능 신필(神筆)"이라고 했다. 

김홍도는 산수·인물·화조·기록·풍속,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다. 

임금의 어진(御眞)도 여러차례 그렸다. '단원'이라는 호는 서른 중반부터 쓰기 시작했다. 

'단원'은 명나라 화가 이유방의 호에서 따왔다. 표암은 "이유방이 문사(文士)로서 고상하고 맑으며 그림이 아취 있는 것을 

홍도가 사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홍도가 이유방보다 나으면 낫지 못할 것이 없다"고 했다.


▶안산은 1970년대 반월 신공업도시가 생기면서 인구가 늘어 86년 시(市)로 독립했다. 

안산시 '단원구(檀園區)'라는 이름에는 위대한 화가의 예술 혼을 이어가려는 시민들 소망이 담겨 있다.

 2005년 단원구에 들어선 단원고등학교 교가(校歌)에는 '예술의 향기 품은 단원 동산에… 미래를 열어갈 기둥이 되자'라는 

구절이 있다.

 세월호에 탔다가 실종된 학생들의 생환을 기원하는 촛불 기도회에서 마지막에 울려 퍼졌던 그 교가다.


▶나라와 지역사회의 기둥으로 자라나야 할 학생들이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희생된 지 두 주일째다. 

단원이 남긴 걸작 중에 '남해관음도(南海觀音圖)'가 있다. 

자비와 구원의 화신 관음보살이 어린 선재동자를 데리고 풍랑 무서운 바다를 건너는 모습이다. 

관음보살 뒤에 숨은 듯 서 있는 동자가 엄마 치마폭에 매달린 아이처럼 천진하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보니 같은 그림도 새롭게 보인다. 

거친 바다의 저 건너 피안(彼岸)에는 번뇌와 고통이 없을 것이다. 

단원이 안타깝게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그 가족을 위로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