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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을 위대하게 만든 '거인의 어깨' [고두현의 문화살롱]

바람아님 2024. 4. 24. 01:00

한국경제   2024. 4. 24. 00:20

■ 과학사 빛낸 '축적의 힘'
기하학도 모르는 촌뜨기 청년
23세에 중력·광학·역학 대발견
데카르트, 케플러, 갈릴레이…
선구자들 업적 위에서 꽃피워
거의 모든 분야 '거인' 덕에 발전
분열·전쟁 부추기는 정치만 예외

팔삭둥이 미숙아가 어떻게 인류 역사 를 바꾼 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근대 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조산아였다. 아버지가 결혼 5개월 만에 죽자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았고 이 때문에 제대로 발육하지 못했다. 또래보다 작고 병약한 뉴턴은 3세 때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외톨이로 자란 그는 가끔 물레방아와 해시계, 물시계 모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천재성은 보이지 않았다.

18세에 친척들의 도움으로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기하학이 뭔지도 몰랐다. 그랬던 그가 5년 뒤인 23세 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프리즘 연구로 빛의 성질을 새롭게 규명했으며, 유율법(流率法) 발명으로 최초의 미분학까지 창시했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피해 잠시 고향에 가 있던 시기였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는 일화도 이때 얘기다.

이처럼 한 사람이 위대한 지식혁명을 한꺼번에 일으킨 1666년을 과학계에서는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뉴턴은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과학자 로버트 훅에게 보낸 1675년 2월 5일 편지의 한 구절이다. 뉴턴이 올라선 첫 번째 ‘거인’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였다. 

뉴턴은 그의 연구 성과에 매료된 젊은 학자들에게도 ‘어깨’를 제공한 ‘거인’이었다....‘거인의 어깨’는 동시대 과학자들의 시야를 넓혀 주기도 한다....과학은 객관적이고 범세계적이며, 종종 사회를 분열시키거나 국가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모는 종교와 정치를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초월의 대상으로 ‘종교와 정치’를 콕 집은 대목이 흥미롭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거의 모든 분야가 ‘거인의 어깨’를 딛고 성장한 데 반해 정치 쪽에는 유독 ‘거인’이나 ‘어깨’가 없다. 380년 전 조산아로 미약하게 출발해 오랜 ‘축적의 시간’ 위에서 창대한 역사를 일군 뉴턴이 보기엔 더욱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겠다.


https://v.daum.net/v/20240424002001180
뉴턴을 위대하게 만든 '거인의 어깨' [고두현의 문화살롱]

 

뉴턴을 위대하게 만든 '거인의 어깨' [고두현의 문화살롱]

팔삭둥이 미숙아가 어떻게 인류 역사 를 바꾼 위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근대 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조산아였다. 아버지가 결혼 5개월 만에 죽자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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