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4. 5. 25. 00:12
[작품편 105. 장 프랑수아 밀레]
시골 여러 풍경 그린
농부들의 ‘라파엘로’
<동행하는 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
키질하는 농부
만종
허름한 차림의 여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들 모두 추수를 마친 들판 한 공간에 남겨진 이삭을 줍고 있었다. 한 알, 두 알….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낟알을 털고, 쥐고, 모았다. 알맹이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으나, 종일 그렇게 나서봐야 고작 몇 줌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결과에 만족하는 듯보였다. 이런 양으로는 빵 한 덩어리어치 밀도 못 얻을 게 분명했지만, 실망의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오늘을 힘껏 살았으면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1857년, 프랑스 바르비종의 정취에 젖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이 장면을 눈에 담지 않고선 배길 수 없었다.그것은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괜히 목울대가 타오르듯 뜨거워지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작업실로 간 밀레는 캔버스부터 찾았다.
이 감흥이 옅어지기 전 서둘러 선을 그었다. 늘 그랬듯 상상을 곁들여 수많은 밑그림을 그렸고, 그 과정에서 인물의 배치와 동작을 정교하게 구현했다.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그림 중 한 점인 〈이삭 줍는 여인들〉이 곧 탄생했다. 그림은 소박했다.
"뎅…. 뎅…."
1857년의 어느 날, 해 질 무렵 바르비종의 산과 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당시 로마 가톨릭 마을에선 매일 오전 6시, 정오, 그리고 오후 6시에 교회 종이 세 번씩 파동을 퍼트렸다. "…종이 울리면 말이다." 밀레는 이 소리만 들으면 어릴 적 할머니의 당부를 떠올렸다. "그게 무엇이든 하는 일을 멈추고, 기도를 올려야 한단다. 꼭 기억하렴." 밀레는 할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이 또한 그리지 않고선 배길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의 가장 눈물겨운 그림, 〈만종〉은 그렇게 탄생했다.
밀레는 1875년 예순한 살 나이로 사망했다. 죽은 이유로는 결핵 등이 거론된다.
"내가 원한 건 부귀와 번영이 아니라, 평화와 안정이었다." 말년의 밀레는 이런 말을 했다.
https://v.daum.net/v/2024052500125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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