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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 日本 안팎 혼란스럽게 만드는 '아베 路線'

바람아님 2014. 5. 10. 07:11

(출처-조선일보 2014.05.08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2차 대전 敗戰 직후 진로 놓고 기시-요시다 정치 투쟁 벌여
90년대 이후 침체에 빠지자 다시 국가 정체성 논쟁 치열
'아베노믹스'는 새롭지 않고 對美관계도 명확하지 않아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사진
2010년 4분기에 중국이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졌다. 
2012년 12월 일본의 자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아베 신조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일본 경제가 중국 경제에 추월당한 것은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한때 미국도 넘볼 정도로 강했던 
일본으로서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가장 완전한 사회 조직과 세계 최고 
과학기술력을 갖춘 '안전 국가 일본'의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렸다.

동아시아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 100년은 일본의 시대였다. 
중국을 축(軸)으로 한 중화 질서가 무너지고 서구 근대 문명을 축으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수천 년 동안 중국의 변방국이었던 일본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떠올랐다. 
20세기 전반부까지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을 본뜬 부국강병 모델을 통해서 동아시아를 호령했다. 
군국주의의 광기를 거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지만 다시 기적처럼 일어났다. 
20세기 후반부에는 평화주의 경제 대국으로 다시 한 번 아시아의 일등 국가로 떠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 일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정치 투쟁이 전개되었다. 
A급 전범(戰犯)으로 분류되어 한때 스가모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기시 노부스케가 이끄는 극우(極右)는 다시 한 번 강력한 군대와 경제력을 갖춘 완벽한 독립국가를 건설할 것을 주장했다. 아베 현 총리의 외조부이면서 정신적 지주인 기시는 일본이 다시 정상 국가로 태어나려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동맹에 묶여 있는 것은 문제라고 보았다.

미군정이 복권시킨 일본의 좌파도 대미(對美) 군사 동맹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한편 대(對)소련·중국 관계 정상화를 주장하였다. 마루야마 마사오와 같은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냉전 중 일본이 엄정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평화헌법을 지지하였지만 미·일 동맹은 반대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결국 선택한 것은 '요시다 독트린'이었다. 요시다 시게루는 기시와 같은 우파이면서도 평화헌법을 준수하고 미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강대국 외교 대신 유엔 등의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 외교를 선택하였다. 
모든 국력을 경제 발전에 쏟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회복하기 시작한 일본 경제는 1968년 서독을 추월하여 세계 2위 경제 대국 자리를 차지한다. 
일본의 극우도 요시다 독트린이 성공을 거듭하자 이에 동조하게 된다. 
일본의 좌파는 몰락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성공하면서 일본은 자만에 빠졌다. 국민과 체제의 우월성과 특수성만 강조하면서 개혁을 늦추고 복지 포퓰리즘에 빠지면서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1년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졌다. 그 후 일본은 2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1%를 밑도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천안문 사태 이후 위기에 빠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 그 후 20년간 중국은 연평균 경제성장률 9%에 이르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일본은 혼란에 빠졌다. 일본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아베는 일본 경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소위 '아베노믹스'를 내세우고 있다. 돈을 무한대로 찍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는 한편 TPP를 이용하여 굳게 닫힌 일본 경제를 열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의 대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70~80년대의 호경기 중에도, 또 20년 넘는 불경기 중에도 수차례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경제 구조의 근본적 개혁을 아베가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 중요한 것은 소위 '정상 국가화(化)' 문제다. 정상 국가라면 경제력에 걸맞게 군사력을 증진시켜 자국은 물론 지역의 안보를 위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모호한 구호가 말해주듯이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이 독자적 군사력을 갖추게 되면 결국 미국과 맺은 동맹은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아베는 미·일 동맹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하면서 미국을 붙잡으려 하고 있다. 외조부와 같이 군사력 강화를 통한 정상적 강대국화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요시다와 같이 여전히 미국과 맺은 동맹 틀 안에 남고자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일본은 현재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 유사한 국가 정체성의 혼란기를 겪으며 주변국들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본이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아베가 외조부 기시가 아닌 그의 최대 정치 라이벌이었던 요시다와 같은 선택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