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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듣고, 느끼고, 반응한다

바람아님 2014. 7. 6. 10:33
● 식물도 듣고, 느끼고, 반응한다

식물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바람소리나 손길을 느끼고, 좋고 싫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한 번 쯤은 관심가져봤을 이 질문에 쐐기를 박을 새로운 답이 나왔습니다.

미국 미주리대 하이디 아펠 박사팀의 연구 결과, 식물은 애벌레가 풀잎을 갉아먹을 때 그 소리에 반응해 방어태세를 취한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습니다. 학술지 '생태학(Oecologia)' 최신호에 소개된 연구결과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식물이 음악과 같은 소리에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꽤 많은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들은 그렇지 않은 식물들보다 더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하다는, 이른바 '그린음악농법'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좀 다릅니다. 애벌레가 풀잎을 갉아먹을 때는 '사각사각'하는 소리도 들리고, 또 애벌레의 움직임에 따라 풀잎에 작은 진동이 전해지는데, 식물은 애벌레만의 이 소리와 진동을 몸으로 느끼고 방어태세를 취한다는 겁니다.

먼저 연구팀은 애기장대(Arabidopsis) 풀 위에 애벌레 한 마리를 올려놓고 잎을 갉아먹도록 한 다음, 애기장대가 보이는 반응을 측정했습니다. 또 애벌레가 잎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모습과 소리를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이 동영상은 여기(http://vimeo.com/99635253)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새로 애기장대 두 포기를 가져와서는 한 쪽에는 아까 녹음한 '잎 갉아먹는' 소리를 들려주고, 다른 한 쪽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있지 않은 빈 녹음을 들려줬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애벌레를 애기장대 두 포기에 각각 올려놓고 잎을 갉아먹게 했습니다. 어떤 차이가 나타났을까요?

놀랍게도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소리를 미리 들려주었던 애기장대는 잎에서 더 많은 기름 성분을 분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머스터드 오일(mustard oil), 또는 '겨자유'라고 부르는 방향족 화합물인데, 이 기름성분은 애벌레가 싫어하는 물질입니다. 즉, 애기장대는 자신에겐 끔찍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이 '사각사각' 소리를 듣자마자 이 물질을 분비해서 즉각 애벌레를 쫓아내기 위한 방어태세를 갖춘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애기장대가 애벌레 소리에만 반응하는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이번엔 다른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부드러운 바람 소리, 아니면 애기장대를 갉아먹지 않는 다른 곤충의 소리는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요? 그런데 결과는 한결같았습니다. 애기장대는 오로지 자신을 갉아먹는 특정 애벌레가 내는 소리에만 기름 성분을 분비했습니다. 식물이 소리의 종류를 '듣고', 구분할 줄 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애기장대가 어떤 방식으로 수많은 진동의 패턴을 구분해서 그에 따라 다른 전략을 취하는지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떤 형태의 복잡한 진동 신호가 식물들을 자극해서 방어태세를 갖추게 하는지, 또 식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물리적인 진동을 인식해서 방어 메커니즘을 가동하게 되는지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식물이 포식자인 곤충의 공격을 인식하는 방법은 사실 물리적인 진동이나 소리만은 아닙니다. 곤충이 분비하는 화학적 물질도 식물이 곤충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직접적인 진동을 느낀다면 식물 입장에선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름끼치는 경험이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진동과 소리가 식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식물이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물의 방어 메커니즘을 병충해 방제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팀이 생각한 점도 바로 그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천적인 곤충이 싫어할 화학물질을 식물이 미리 분비하도록 진동을 이용해 자극을 준다면 그야말로 무공해 농약을 살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셈입니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식물에게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방법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식물은 분명히 듣고, 느끼고, 반응합니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이 느끼는 외부 자극을 식물들도 똑같이 느끼고,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감각기관을 최대한으로 활용합니다. 단지 그 방법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