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31] 술에 의지했던 도시 노동자의 초상

바람아님 2014. 8. 23. 08:09

(출처-조선일보 2014.08.23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1834 ~1917)는 1876년, 파리에서 '압생트'를 발표했다. 

평론가들은 대낮부터 카페에 앉아 독주(毒酒)인 압생트를 마셔대는 남녀를 그린,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이 그림을 일제히 비난했다. 드가는 대단히 당황했다. 

원래 부유했던 그의 집안이 이즈음부터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켜야 했던 그는 다급히 그림을 런던의 

뒤랑-뤼엘 갤러리에 보냈다.


뒤랑-뤼엘은 파리의 유명한 화상(畵商)이었다. 
그는 1870년, 보불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지금도 런던의 최고급 쇼핑가로 
성황인 본드가(街)에 갤러리를 열고, 프랑스 미술을 영국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압생트'는 바로 거기서 헨리 힐에게 팔려나갔다.

헨리 힐은 브라이턴시(市)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재단사였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품목을 군복으로 특화하여 사업이 번창하자 본드가에 진출해서 
매장을 열고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이미 1874년 이웃인 뒤랑-뤼엘 갤러리에서 드가의 발레리나 그림을 구입했었다.
헨리 힐이 발레리나에게 끌렸던 이유는 비쩍 마른 몸으로 발레라는 고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여인들에 대한 동정심이었다고 한다. 
'압생트'의 남녀 또한 힐에게는 술에 심신을 맡길 수밖에 없는 가련한 도시 노동자들로 비쳤을 것이다.

이 그림은 1893년, 힐이 죽고 그의 소장품이 경매에 부쳐지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영국의 평론가들은 몇 달 동안 쉬지 않고 '이 추악하고 천박한 한 쌍'에 대해 악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누군가는 전쟁 통에도 갑부가 되고, 
또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를 싼 술로 시작하는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