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19] 러시아 혁명과 말레비치

바람아님 2014. 8. 20. 14:49

(출처-조선일보 2009.09.08  김영나 서울대교수·서양미술사)



공산주의와 아방가르드 미술운동? 분명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혁명정부와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몇 년간 

협력관계에 있었다. 이들이 서로 의기투합한 부분은 기존 질서를 무시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였다. 

미술가들은 산주의 정부야말로 자신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실현된 것으로 생각했고,혁명정부는 미술가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재료와 소재, 산업체 구조물에 대한 관심, 

과학과 미술의 결합이 미래를 약속하는 자신들의 구호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혁명을 지지한 말레비치(1878~1935)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의 주요 화가다. 

1915년 그의 작품은 유럽에서 한창 유행하던 추상미술의 영향을 받아 자연이나 외부 

세계와 완전히 절연한 비대상(非對象) 회화가 되었다. 화면은 기본적으로 사각형으로 

구성된다. '검은 사각형과 빨간 사각형'에서 보듯 단순한 정사각형, 사각형을 교차해 

만든 십자가 형태, 또는 여러 개의 사각형이 서로의 관계에 의해 역동적이고 긴장된 

상태가 되는 추상 작품이었다.

무한한 우주적 공간과 에너지가 함축된 그의 화면은 유토피아를 나타낸다. 

말레비치를 비롯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미술은 그때까지만 해도 후진적으로 

보이던 러시아 미술을 단숨에 유럽 어느 나라의 미술보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것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1924년 레닌이 죽자 실험미술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미술은 노동자의 기준에 맞추어야 하며 이젤 회화는 부르주아 회화라고 주장하는 정부에 대해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개인의 

표현이라고 생각한 말레비치는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입지가 점점 좁아지자 그는 구상(具象)미술로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말레비치는 추상 회화를 계속 그렸고 예전에 그린 것처럼 연대를 속여 적어 넣었다. 

1932년 스탈린은 소위 프롤레타리아 미술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였고, 2년 후에 말레비치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에는 그의 작품에 걸맞게 사각형의 묘비가 서 있다.



<각주 -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프랑스어,avant-garde]

<예술>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 운동. 또는 그 유파.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일어난 다다이즘, 입체파, 미래파, 초현실주의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비슷한 말) 전위5(前衛)ㆍ전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