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0.20 이응준 소설가)
대한민국 사회의 이념 갈등을 그저 일상다반사 정도로만 넘기는 사람이 많다.
나는 굳이 낙관(樂觀)을 반대하고픈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재앙이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임계점 이전까지는 기껏해야 '설마'이겠으나,
일단 도래하면, 엄중한 재앙인 법이다.
훗날 탄식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우리는 솔직해져야만 한다.
한국 사람들의 사색당파 패악은 과거 일본인들이 한민족을 폄하하려고
한국 사람들의 사색당파 패악은 과거 일본인들이 한민족을 폄하하려고
조작한 모함이 결코 아니다.
저 관념에 찌들어 부패하고, 인류사에 손꼽히는 악마적 노예제도로
무너져가던 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우리의 극심한 이념적 분열상은 나라가 없는 독립운동사에서조차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방정국(1945~1948)에는 이념 대립에 의한
암살이 엄청났다.
당연히 칼도 사용됐으나 권총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고하(古下) 송진우, 몽양(夢陽) 여운형 등이
그렇게 죽어갔을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백색테러와
적색테러가 백주에도 난무했다.
미군정 CIC 통계는 1947년 8월 한 달간에만
정치적 반목이 원인이 된 테러가 총 505건
발생해, 사망이 90명, 부상자가 1100여명이라고
적고 있다.
여운형은 단 한 번의 테러로 비명에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해방정국에서 총 열두 번의
테러를 당한 끝에 1947년 7월 19일 오후 1시경,
혜화동 로터리에서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가다가 길에서 뒤쫓아 달려오던 한지근이
쏜 권총에 죽었던 것이다.
우리의 정치 수준이 계속 이대로라면,
통일 대한민국이 저 해방정국보다
덜 혼돈일 것 같은가?
일단 그 나라는 혀에 독이 발린 인간들의 지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해체된 인민군의 무기들을 뒷골목에서 구해 자신들의 정의를 위해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저 광화문 광장에서 소위 우파가 좌파를 희롱하기 위해 먹어대던 피자와
소위 좌파가 우파를 모멸하려고 뿌려대던 개 사료가 어느 날 순식간에 칼과 총으로 변하는 요술은
이미 우리의 증오로 가득 찬 가슴속에서는 현실이다.
나는 어두운 예언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며, 과거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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