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좋은 공연이나 전시에 가면 꼭 보이는 인물이 있다. 예전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요즘엔? 주한 프랑스 대사 제롬 파스키에다. 그가 보여야만 "내 선택이 옳았군" 하고 안심이 될 정도다.
그를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정화전'(10월 26일까지)에서 봤다.
"아니 여기까지? 졌다 졌어!"
추사 글씨와 해설을 대충 읽고 나오려는데, 제롬은 작품마다 상당히 오래 머물렀다.
영문 해설도 없으니 "좀 도와줘야겠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사십로각(四十鱸閣)―40마리 농어가 있는 집'〈사진〉이라는 글씨 앞에 서 있는 그에게 한자 읽을 줄
아느냐고 물었다.
"잘 못 읽는다. 사십은 쉬운 한자이니 안다.
셋째 글자(鱸)엔 생선이 그려져 있으니 생선의 종류이겠고,
마지막 글자(閣)는 현판에서 본 글자다.
대문이 있는 집을 그린 것 아니냐? 40마리 생선이 있는 집이라는 뜻 같은데, 그보다 조형미가 대단하다"라며 극찬이다.
<사십노각(四十鱸閣)> 30.0x122.4cm 1855년 70세무렵 /간송미술관 제공 |
순간 부끄러웠다. 겨우 한자 조금 아는 주제에.
그렇다. 그는 타고난 신동, 추사의 천재성을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물건의 모양을 본떠 만든 회화문자다.
즉 그림이다.
추사의 글씨를 그림처럼 해석해도 그 '탁월함'은 이방인을
감동시킬 정도로 보편성을 띠었다는 얘기다.
멀리 떨어져 눈을 깜박이며 추사 글씨를 다시 봤다.
그런데도 내 눈엔 오직 한자로만 들어온다.
절제된 붓놀림의 팽팽한 긴장감? 모르겠다.
아무래도 뇌를 씻어야겠다.
뇌에 좋은 음식이 뭐였더라? 맞다!
호두. 집에 가는 길에 호두파이를 사야겠다.